참으로 애절한 연서(戀書)였다. 만난다는 건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그리움은 물안개 같은 실마리의 그림자를 어떻게든 그려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미실이 몸을 풀 때쯤 사랑을 먹지 못해 굶어죽은 사다함의 소식이 전해졌다. 마음자리가 넉넉해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그를 생각하면, 그것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미실의 뇌리를 찔러댔다.

소식을 들은 남당(南堂)에선 가야 정벌에 앞장선 용맹한 장수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사자(使者)가 달려갔고 이레 넘게 굶은 사다함은 죽기 직전 두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아, 파랑새야 파랑새야!”

마지막 말이었다. 핏기를 잃은 얼굴은 백랍처럼 굳어 있었다. 무언가를 빼앗긴 듯한 눈동자는 허망한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몇 번인가 미실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는 워낙 가늘어 신음처럼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는 꽃마차를 타고 있었다. 저승으로 가는 그 길은 향기 없는 꽃들이 무심하게 서 있는 혼(魂)의 세계였다. 죽은 자는 이승의 미련을 버리라고 저승의 염귀(閻鬼)가 혼(魂)에 구멍을 뚫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이승의 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 안녕 내 사랑. 파랑새여, 파랑새여!”

미실은 자신의 꿈속을 찾아온 사다함의 부드러운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앞에 있으리라 생각한 그가 없었다. 눈앞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 정인(情人)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정겨운 목소리만 남겨놓았다. 사람을 풀어 사다함의 행적을 찾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화장(火葬)되어 허공에 뿌려진 지 하루가 지났다. 혼령이라도 자유스럽게 대자연을 어루만지며 사랑하는 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의도였다.

얼마 후 아들이 탄생했다. 아비는 사랑에 굶어서 죽고 자식은 그 사랑을 받고 태어났다. 미실은 아이를 보고 있으면 사다함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 범벅을 이뤘다. 그는 사랑을  빼앗긴 자신의 무능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안타까워했다.

‘아, 사다함 사다함이여!’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이제는 자신의 꿈길을 찾아오지 않는다. 정을 뗀 것인가. 이승에 미련을 버렸다면 자신도 잊은 것이다. 미실은 깊은 한숨만 몰아쉬었다.

여인에게 세도란 게 무슨 필요 있는가.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으나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세도의 줄기가 필요한 것을 깨달았을 때엔 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젠 꿈을 꾸어도 5천의 화랑을 이끌고 대가야의 국경의 성문(城門) 전단량(栴檀梁)을 기습하는 그의 모습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생각이 깊어졌다. 할머니 슬하에서 자랄 때 언제나 들었던 말은 ‘대왕의 색공’이었다. 대왕을 섬기지 않으면 그 자리는 시기와 질투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무엇보다 대왕의 품에 안기는 게 먼저라는 가르침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은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보장받을 권리는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가살가살 꼬리치며 일어나자 또 다른 불안이 바람처럼 엄습했다.

‘내가 세종 전군을 섬기지만 그게 높은 자린 아니야. 태후가 어떤 계략으로 공격해 올지 모르잖아.’

어디 그뿐인가. 자신이 몸을 풀기 전만해도 금방 집으로 돌아갈 갓 같던 융명(戎明)은 왠지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잘 따랐다. 정실과 차비기 때문에 지켜진 게 아니란 점은 누구보다 미실이 잘 알았기에 찝찔한 불안으로 남아 있었다. 가끔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사도왕후가 위로했다.

“아이는 새 생명입니다. 그 아비가 음식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지만 사다함은 용맹한 장숩니다. 그 아이는 세종 전군의 마복자(摩腹子)가 되겠으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예에, 마마.”

“내가 자넬 보자 한 것은 태후마마가 진종 전군의 마음의 훔쳤다는 것이네.”

“훔쳤다는 것은···.”

“장차 왕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사부(異斯夫)를 필부로 뭉쳤다는 거지. 대왕께선 이를 아시고 처리를 고심 중이시네. 가야 정벌의 총사령관인 그를 해임시키고 다른 장수를 파견하려 은밀히 물색 중이시기는 한데···,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고민 중이시네.”

“···.”

“만약, 태후마마를 따르는 자들과 대왕이 칼을 겨눈다면 어찌 하겠는가. 자넨 잠자리의 시중을 맡는 세종 전군을 따라 대왕과 등 돌리겠는가, 아니면 대왕을 도와···.”

“왕후마마, 소인이 궁에 들어온 것은 양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 때문입니다. 두 분의 은혜가 내 마음판에 녹지 않은 채 남았는데 소인이 어찌 등 돌리겠나이까. 소인은 언제까지 두 분만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오, 참으로 고맙네. 역시 자네는 대원신통이야. 자네가 우리 부부를 도와 헌신한다면 내 어찌 삼생(三生)의 동맹을 마다 하겠는가. 자, 이리 오게. 자네와 나는 삼생의 동맹을 맺음세.”

사도왕후는 그녀를 안쪽 방으로 데려갔다. 집안의 먼 친척이라지만 사실 그녀는 미실의 숙모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눈 앞에 위험이 다가오는 것이라 보고 사도왕후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찾아오는 후생을 위해 삼생동맹을 한 것이다. 이것은 언약이자 협정이며 피의 약속이었다.

▲융명(戎明) ; 세종전군의 차비. 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이 융명(肜明)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한자 음만 바꿨을 가능성이 크다.

▲삼생동맹(三生同盟) ; 전 생애 · 현 생애 · 후생을 합친 동맹

▲사다함의 아이는 여름에 태어났으므로 ‘하종’이다.

▲기마도는 먹물을 묻혀 판각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