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궁으로 돌아오는 날 월성(月城)은 떠들썩하니 중신들까지 잔치마당에 빠져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화기애애하여 전연 이상이 없는 것 같았으나 미실(美室)의 마음자락엔 정실부인으로 맞이한다는 세종 전군의 눈물어린 읍소(泣訴)가 있었고 보면 응어리진 마음자락에 쌉싸름한 바늘 뜸을 뜬 것이다.

정실부인이 된다는 자신의 혼인잔치에 미실은 ‘오리(鴨)’를 사용했다. 당시의 신라 사회에선 너무나 뜻밖인 행위였다.

오리(鴨). 훗날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 우리 역사를 왜곡시킨 것으로 인해 느닷없이 ‘전안례(奠雁禮)’가 생겨났다. 이를테면 혼인의 초례(醮禮) 시기에 ‘기러기 아비’란 자가 기러기 한 마리를 보자기에 싸 신랑을 뒤로 세우고 신부집에 도착할 때 사용하는 기러기다. 혼인에 사용된 기러기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연분을 지킨다고 믿는 새다. 그래서 백년해로의 징표로 삼지만 이것은 해괴한 문화적 찬탈이다.

여기서 잠깐 조선시대 혼인의 노래를 살펴보자. ｢신가랑(新嫁娘)｣이다.

신랑은 목안(木雁)을 쥐고

신부는 건치(乾雉)를 쥐었으니

그 꿩이 울고 기러기 날 때까지

두 정 그치지 않으리라

복 있는 손으로 홍사배(紅絲盃) 들어

낭군에게 합환주(合歡酒)를 권하나니

첫번 잔에 아들 낳고

세번 잔에 오래 사네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한 후 이미 ‘오리’의 신화는 사라지고 ‘기러기’가 자리 잡았다. 왜 우리는 일본인들의 간교한 술책에 놀아나 오리를 천시했는가를 돌아볼 일이다.

우선은 문자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쌍(雙)’이란 글자는 새 추(隹)가 겹으로 있고 그 밑에 또 우(又)가 있다. 그러면 새는 세 마리다. 이러한 새를 어디서 볼 수 있는가.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다. 이것은 두 마리 새에 영등바람을 타고 날아온 ‘마고 삼신’을 뜻하는 오리다. 다시 말해 ‘마고 할미’는 ‘오리의 시대’라는 뜻이다.

오리를 뜻하는 한자는 압(鴨)이다. 글자를 쪼개면 갑(甲)과 조(鳥)다. 가장 으뜸이 되는 새가 오리란 뜻이다. 그래서 마고 할미는 시집갈 때 오리를 들려 보냈다. 전통혼례에선 북두칠성이 뜨는 시각에 일을 치르므로 전압례(奠鴨禮)라 하는데 지금은 의미가 왜곡돼 ‘전안례(奠雁禮)’로 바뀌었다.

미실이 굳이 뻑적지근하게 잔치를 연 것은 자신이 세종 전군의 정실이라는 점을 천하에 알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녀의 거만한 허드레가 지소태후의 오장을 긁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내명부 아이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전군 마마의 정실부인으로 어느 대원신통이 그런 일을 했는지···. 내가 영흥사에서 내려와 전군 처소에 들렸더니 융명이란 계집이 목에 풀칠을 하고 서 있기에 그랬지요. 너는 어찌 위아래를 모르면서 전군의 잠자리 시중을 들려 하는가. 이젠 내가 정실부인이니 나의 허락을 받고 시중을 들어라. 또한 아침저녁에는 나의 거처에 들려 인사를 올려라!”

대갈일성 호통을 치는 바람에 융명은 어찌할 바 모르고 종종걸음을 치다 부친에게 서찰을 보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아버님,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세종 전군에게 시집 와 왕실과 인연을 맺는다 했는데 쫓겨난 대원신통의 계집이 산에서 내려와 정실(正室) 자리에 눌러앉았으니 나는 어디에 하소연할 곳 없는 뒷방 계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차비(次妃) 자리도 눈치를 봐야 앉을 수 있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진종 전군은 벌컥 화를 냈다. 귀한 딸을 며느리로 달라기에 마지못해 허락했더니 이제는 정실이 아닌 둘째 부인으로 머물러야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골정통(眞骨正統)의 피를 받았으나 융명 역시 같은 핏줄이다. 이제까지 대원신통을 몰아내거나 그 싹을 깨끗이 쓸어버리겠다는 것은 빈말이었단 말인가. 진종 전군은 끓어오르는 화를 다독이며 어찌해야 자신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가에 골몰했다.

‘이건 아니야. 지소태후가 오랜 섭정으로 식감(識鑑)이 떨어지더니 왕족의 후예를 진흙탕에 몰아넣었어. 이런 처지에 떠드는 것도 우습지만 아무 말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잖은가. 날이 밝으면 주상을 뵙고 뒷일을 의논해 봐야겠어.’

왕궁이 다소 소란스러운 가운데 사도왕후의 부름을 받은 미실은 월지궁에 들어가 독대(獨對)했다.

“이제 마음이 좀 풀리셨소, 미실 낭주?”

“예에, 왕후마마. 마마의 덕분에 쇤네의 한이 한꺼풀 벗겨졌나이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몸을 풀 때까지 성급히 행동 마시고 모든 걸 모른 척 하세요. 모든 건 내가 알아서 처리를 할 것이니. 그나저나 첫사랑인 사다함 공을 어찌 됐습니까. 낭주가 왕실로 들어오는 것은 뻔히 아는 처지가 아니오?”

“예에, 그게 마음이 아픕니다. 사다함 공이 내게 서찰을 보냈습니다. 궁금하시면 왕후마마께서 직접 보시지요.”

미실이 소매 속에서 꺼낸 서찰은 떠나는 님을 원망하며 탄식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한 편의 시였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 내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내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 다시 날아 구름 위로 가는가

이왕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왜 왔는가

부질없이 상심하다 여위게 해 죽게 하려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되리

그대에게 날아들어 보호하는 호신이 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부처 보호하여

천 년 만 년 죽지 않게 하리

  ▲쌍(雙) ; 이 글자는 두 개라는 의미보다는 세 마리의 새를 뜻한다. 여기에서 새는 오리(鴨)다. 
      ▲압(鴨) ; 이 글자는 쪼개면 최초의 새라고 <부도지>에서 주장한다. ‘갑조’기 때문이다.  
  ▲독대(獨對) ; 단 두 사람이 만나는 것

▲오리는 마고 할미가 다스리던 세계의 신령한 새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