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은 소상 아래 엎드려 있었다. 전군의 처소에서 걸친 화려한 복색이 아니라 무명으로 짠 납의(衲衣)로 짙은 회색의 승복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사에 있는 스님들이 납의를 입는 것은 본래의 마음을 속이기 위함이라 했다. 승복은 검은 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그 중간이다. 이것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계인 이면계(裏面界)의 세상이다.

목탁(木鐸)을 보라. 그 생김 생김이 어떤 것을 닮았는가. 불법에서는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萬法歸一)’고 했다. 하나라는 게 뭔가. 모든 것을 일으키는 첫 시작이지만 결코 하나로 끝을 내지 않는다. 그것은 삶이 끝나고(生) 죽음이 시작되는(死) 숫자다. 불법에선 ‘색(色)’을 지나치게 밝히는 걸 경계하지만 금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다함의 눈에 비친 미실의 모습은 왕실에서 쫓겨난 가련한 여인이 아니었다. 무언가 드러내지 않은 비장의 묘수(妙手)를 가슴에 품은 채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오는 것을 배웅하게 하였고 보니 사다함은 마냥 엉거주춤 서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실 낭주.”

그래도 기척이 없었다. 사다함은 목을 앞으로 늘여 소리를 약간 높였다.

“미실 낭주!”

엎드린 그녀의 몸이 무엇에 놀란 듯 깜짝 움츠리더니 순식간에 돌아보았다.

“아, 사다함 공.”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졌다. 많은 얘기가 있었다. 비록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엔 장성(長城)을 쌓을 사연이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모여들더니 듬직한 보따리가 되어 꼭꼭 조여진 채 자리를 잡았다. 이제 그것들이 첫사랑의 님을 만났으니 스르르 매듭이 풀려나갈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또 흘렸다.

사다함은 그것을 반가움의 눈물이라 여겼다. 첫정을 주고 멀리 떨어졌다 다시 만난 재회의 기쁨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 보았다. 세종 전군에게 쫓겨나 오죽했으면 영흥사를 찾아와 슬픔을 달래고 있는가. 사다함은 그렇게 여겼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 환합전(歡合殿)의 소상 아래 엎드려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은 하나의 의문 때문이었다.

그녀가 할머니에게 교육 받을 때는 남녀간 색사는 유희(遊戱)가 아니라 하나의 항체를 이루기 위함이라 들었다.

‘항체? 항체라···.’

골똘히 생각에 빠진 그녀는 사다함이 오는 줄도 몰랐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느끼지 못했다. 영흥사는 그녀의 할머니 옥진궁주가 원찰(願刹)로 지은 것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자손손 이어질 후손들을 위해 환합전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여느 절의 불상이나 소상(塑像)처럼 부처님의 모습이 좌상(坐像)으로 있는 게 아니었다. <동현자(洞玄子)> 48수의 체위 중 가장 으뜸인 69의 모습이 자리잡았다.

  선대왕 법흥왕은 재위 15년인 528년에 신라인들이 불도를 믿게 했는데 향과 의복을 어찌 쓰는지를 군신들이 몰라 묵호자가 사용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향(香)이라 부르는 이것을 불에 태우면 좋은 향내가 피어오릅니다. 또한 정성을 다해 신통(神通)에 이르면 성스러운 지경이 되지요. 흔히들 신성(神聖)이란 말을 쓰는데 이것은 삼보(三寶)에 이르른 것을 뜻합니다. 첫째는 불타요 둘째는 달마요 셋째는 승입니다. 향을 태우고 축원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본래 영흥사엔 향이 없었다. 왕실에서도 의식(儀式)이나 제례(祭禮)에 가끔 이용하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사용치 않고 있었다. 미실은 세종 전군과 살았기에 향을 어찌 사용하는지를 알아 그것을 들고 나온 것이다.

향이 타오르며 실타래처럼 허공에 흩어지자 미실은 성행위에 대한 할머니의 주장을 다시 떠올렸다.

“얘야, 사람의 몸에서 가장 높은 부위가 어디겠느냐?”

미실은 얼른 자신이 서 있을 경우를 생각했다. 반듯하게 서 있으면 높은 부위는 정수리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서 있더라도 두 팔을 편 채 하늘로 향했다면 가운데 손가락이 가장 높은 위치다.”

그러므로 약사(藥師)는 한방원리를 이용해 손끝과 발끝을 인체의 최상, 최하의 지점으로 보고 심장을 중심점으로 삼았다. 할머니는 어디서 들었는지 그런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사람의 몸은 천지자연의 모든 힘을 따 담아 우리 몸을 돌게 하는 경락맥(經絡脈)이 있다. ‘경(經)’이란 우주 정기를 따 담는 간선으로 열두 개가 있는데 이것을 십이경(十二經)이라 한다. 또한 이 경선은 인체의 모든 장기와 연결되며 장기(臟器)를 감고 있는 지선(支線) 역할을 하는 선을 낙(絡)이라 한다.”

우리 몸의 중추신경, 이를테면 훗날에 모습을 드러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로부터 각각의 단말장치(端末裝置)로 나오는 간선을 맥(脈)이라 하는데, 등골의 중심을 타고 정수리로부터 엉치뼈 끝까지와 있는 게 독맥(督脈)이다.
  그런가하면 턱에서부터 인체의 앞면 정중앙선을 타고 내려와 항문과 음부의 경계선으로 개미 허리진 부분까지 내려온 부분이 임맥(任脈)이다. 사내에게 있어선 독맥이 양성(陽性+)이고 임맥이 음성(陰性-)인 반면 여성은 반대로 독맥이 음성이고 임맥이 양성이다.
  남녀가 마주 보고 누워 성행위를 하는 것은 전기로 말해 스파크 현상과 같다. 우리의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전화일 경우 서로 말이 전해지고 녹음기라면 테이프가 작동되고 티브이라면 화상(畵像)이 떠오를 것이다.

옥진궁주는 몸을 전자석(電磁石)으로 보고 활용법을 들려준 것이다. 다시 말해 이곳 환합전은 놀이를 펼칠 수 있는 은밀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