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홍경래를 주목하면서 충청도 지방에서 일어나 홍경래사건의 모델이 된 이몽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몽학은 이미 필자가 오래전에 한 신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한다.
- 충청도 부여와 청양이 마주한 한적한 강가에 둔내라는 들판이 있지요. 그 들판의 한 능선 넘어 작은 방죽이 있고 이 위에 이몽학의 집터라 전해 오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필자는 한때 이 전설 속의 장수 이몽학을 쫒아 꿈속에서 가위까지 눌리며 그의 전적의 여로를 탐사한 적이 있었는데요. 훗날 이 길은 이중환 선생이 택리지를 저술한 코스라는 것을 알기도 했었지요.
이몽학.
그는 만고의 역적이었지요. 사초가 계속되는 한 아마도 그의 전적은 강상의 윤기를 백번 하고도 백번을 더한 반역자요 이단아요 패륜아였을 터입니다. 난리가 나 나라가 누란에 빠지고 종묘에 향이 끊기며 사직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의병을 만들어 다투어 나아가 싸울 판에 오히려 반란군을 모아 도성을 치겠다고 나섰으니.
이몽학은 1492년 7월 8일, 부여 홍산에서 최초로 군사를 모아 홍산 관아를 무너트리고 현감을 척살하고는 곧바로 정산현으로 쳐들어 와 둔내에 진을 치고 군대를 잠시 조련합니다. 둔내는 이몽학의 집이 있고 그는 여기서 무량사 승려들을 규합하고 부여 정산 지역의 종들을 모아 동갑계를 조직하여 힘을 기르던 터전이었지요.
이몽학은 사내 중의 사내였던 모양입니다. 전주의 김덕령 장군과 교우하고 정여립 등과도 교우를 했던 것을 보면 그는 호서 지방의 대장부였던 것은 분명 할 터이죠. 그는 한이 있었던 듯합니다. 정치 싸움으로 진저리를 치게 하는 조정,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 가렴주구로 날을 세우는 목민관들, 거기다 전쟁이 나자 백성들에게 모든 피해를 전가하며 정신 못차리는 세태에 왜군에 향할 칼을 조정으로 돌린 것은 아닐는지요?
당시 이몽학이 정산에서 군대를 키울 때의 현감이 김장생인데요. 사계 김장생. 이 절대 유학의 비조도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듯합니다. 그를 이어 현감으로 내려온 정대상이 이몽학군을 보고 도망을 쳤다가 참형을 당하지요. 이몽학은 한때 1만여 명의 군사로 홍산 정산 청양 남포 대흥 등 다섯 관아를 함락시키고 홍주성에 입성해 정부군과 대치를 하다 홍주목사 홍가신의 기지로 목이 잘리고 난은 막을 내리지요.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던 홍가신. 그리고 얼마 후 이순신의 수군에 합류해 전사하는 해미 수영장 최호 장군 등이 정난공신에 오르기도 하고요. 기가 막힌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지요. 전쟁 중에 난을 일으킨 전대 미문의 이 사건은 선조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고 이후로 아무도 믿지 않는 이간질과 토사구팽과 상호견제의 술수로만 나라를 경영하는 계기가 되지요.
이로부터 20년 후 허균이 공주목사로 내려와 이몽학 난의 현장을 실감나게 구경하고 홍길동전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시답잖은 정치는 백성을 충신으로도 만들고 역적으로도 만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몽학은 종친의 서얼의 자식으로 충청도 홍산에 내려와 살며 한현, 승려 능운, 팽로, 노비 임억명 등과 어울려 동갑(同甲)이라는 계를 만들어 주변 세력을 넓히며 반란을 일으켜 1만여 명이나 되는 반군을 모아 한양 진격을 시도하며 당시 왜군과의 전쟁에 전전긍긍하던 조정을 공황상태로 빠트린 인물이다.
필자는 이몽학의 활동지와 출생지가 겹치는 관계로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수많은 이몽학에 대한 각종 이설을 접하고 또 홍길동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참조를 한 일이 있다. 그러다 이 지역에서 한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청양군 목면 송암리 강선생(면암 최익현 선생의 외손자)이 소장하고 계신 '이역선생고'를 읽다가 이몽학의 동갑회에 대한 한줄의 글을 접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 산동에 수백년간 역도(이몽학)의 난으로 빛이 들 날이 없었다. 역도는 바둑과 씨름으로 무리배를 모아 동갑회라 하고 끝내 일을 치르다 아무것도 못했던 것이니...
동갑회는 대동계의 전신쯤 되는 말이다. 같은 나이들끼리 모여 유유상종하며 애경사에 부의도 하고 협조도 하자는 일종의 향학 개념의 모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몽학은 바둑과 씨름으로 동지들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몽학의 난의 평정군으로 참여, 공주에 진군해 있던 충청어사 이시발의 유문에 전하는 서찰 한 통을 보면 당시의 바둑의 실태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시발은 문인이면서 병법을 잘 알았기에 임진난중 유성룡의 종사관으로 전장을 누빈 사람이다.
그는 일찍 죽은 아내 대신 젊은 여인 이씨를 측실로 맞았는데 그녀 또한 10여년 만에 죽어 이를 슬퍼하며 제측실문(祭側室文)을 지어 자신의 문집에 끼워 넣는다.
- 내가 오랫동안 외직을 떠돌아 그대는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나보다 어린 연배로 내가 먼저 죽으면 그대 혼자 어이할까 걱정이 많았는데 그대가 먼저 가버리니 나는 어찌하란 말인가.
매양 그대가 사랑스러웠던 이유는 그대의 아름다운 미모만이 아니었다. 글 잘하고 바둑 잘 두며 자수에도 능하니...
아, 내가 그대를 선산에 묻고 묘지앞에 향불을 피우고 3년을 꺼지지 않게 하리라.
젊고 아름답고 거기다 글 잘하고 바둑까지 잘 둔다니 이시발이 아니라도 어떤 남자가 사랑하지 않았으랴. 이시발의 망부(婦)가가 압권이다. 묘지 앞에 향을 피우고 3년을 꺼지지 않게 하겠단다. 여자 알기를 뭐같이 알 듯하던 조선의 사대부의 또 다른 모습이 숙연하다.
이몽학은 바둑과 씨름을 핑계로 충청도와 호남을 주유하며 반란을 도모했던 것이다. 홍경래가 10년을 거쳐 난을 준비했다 했으니 이몽학도 그 정도의 시간을 공을 들였을 것이다. 이몽학이 김덕령과도 교유를 했던 흔적은 있다.
물론 그들이 반역이라는 기치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힘을 합쳤다면 이몽학의 난은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당시 충청도에서 한양 사이에는 막아서는 군대가 없었다. 권율의 군대가 상주에 있었고 명의 유격군은 울산 근방으로 전개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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