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동은 평화로워 보였다. 오포장과 가희는 잔칫집에서 한끼를 잘 해결하고 박천읍으로 길을 잡았다. 다복동은 역사적으로 진두(津頭)라는 지명으로도 불리던 곳이었다. 배를 타는 곳이란 의미다.

오포장과 가희는 도중에 세리(稅吏) 등에게 당하는 집들을 보았다. 호방에서 나온 호방 막하(幕下)들의 극성이 상상 이상이었다. 호방은 오늘날로 따지면 재무과장이고 막하는 재무과 직원들이다.

목사나 군수 밑에는 책실(冊室)이라는 비서실이 있고 비서가 있다. 그리고 이방을 중심으로한 육방에 막하들이 있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 나오는 관장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이방은 코미디다. 동헌마당에 의자 하나 내놓고 관장이 근엄하게 앉아 있고, 그 옆에 이방이 무엇인가를 적으며 송사를 하는 모습을 그린 작가들은 아예 역사의 문외한이라고 보면 된다.

지방 관청에는 수많은 실내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은 각종 공무를 보는 사무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을 놔두고 마당에서 중요 공무를 본다는 발상은 한마디로 춘향전 정도를 읽고 역사 쓰기에 나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은 오늘날 지방 군(郡)의 기획실장과 자치 행정과장을 합해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어째 지난 가을에 내야할 환곡을 아직도 못냈는가?"

"먹을 곡식도 없습니다요. 저 아이들을 보십시요? 벌써 사흘째 피죽 한 그릇 못 먹였습니다요."

"그건 다 변명이고? 여봐라 세간을 다 끌어내라."

세리의 지시에 포졸들이 방과 부엌으로 난입하여 세간살이들을 마당으로 끌어냈다. 포졸들을 막아서는 주인에게는 폭행이 가해졌고 울고불고 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아수라였다.

"어머?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가희가 오포장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러나 오포장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호호, 저들은 나라 일을 하는 거 아니니? 지난해에 갚아야 할 환곡을 아직도 못갚았다는 거 아니니?"

조선은 관에서 백성들을 상대로 공식적으로 미곡 대출업을 했다. 춘궁기에 쌀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돌려받는 형식이다. 국가재정을 늘리고 어려운 백성들의 사정을 돌보겠다는 이 정책은 토지와 인구수에 부과하는 세금의 변질보다 악질적인 것이 되어 조선 사회를 해체하는 단초가 된다.

환곡이 고리대금으로 변모한 것이다. 관장들은 이 고래대금을 이용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아전들은 관장들과 부를 나누게 된다. 실제보다 엄청난 고리채를 부과하고 고리채로 식량을 빼앗긴 백성들은 다시 고리채를 써야하는 악순환이 조선 사회의 경제구조를 망가트린 것이다. 환곡의 폐해는 영정조 시대에도 더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세금 못 내면 죽으면 그만이지

그렇지 않다면 매라도 감당해야

집을 팔면 자식을 건질까

자식을 팔면 누구에게 의탁하리

처자식에게 인정이 남아있기에

죽든 살든 함께는 하는 것이지만

처에게 머리 속의 이를 잡게 하노라니

두 줄기 눈물 하염없구나.

이학규(1770-1835)는 1810년대의 조선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한다. 세금을 못 내면 관아에 끌려가 매를 맞는 것이 법이었다.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집을 팔던가 아니면 자식을 팔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수시로 불려가 매타작을 감당해야 했다.

조선은 사람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였다. 사람 한명의 가치가 말 한 필에 못 미쳤다. 조선의 격조를 자랑하는 선비 문사들의 전원시를 보면 수시로 동자(童子)가 등장한다. 산에 집을 한 칸 지어놓고 거문고와 바둑으로 여생을 살겠다면서 잔심부름할 아이를 거론하는데 십중팔구 이렇게 팔려온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