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술 그리고 간단한 다과로 채워진 상을 물리고 세사람은 앞으로 한걸음씩 나와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열려 있던 방문이 닫혔고 그들의 소리는 방문을 벗어날수 없는 낮은 음성이었다. 말은 이희저가 묻고 김창시가 답을 하는 식이었다. 홍경래는 조용히 듣고있을 뿐이었다.

"김군사 그동안의 준비 과정을 말해보시요?"

이희저는 김창시를 군사(軍師)라고 불렀다. 김창시는 홍경래 이희저 김사용으로 짜여진 홍경래부대의 삼두(三頭)의 모사이자 참모였다.

"지난 수년여 서북 일대에 깔아 놓은 망(網)이 이제 그물이라 할만합니다. 가산 다복동을 중심으로 한 이대인과 청룡산 목우산에서 조련 중인 홍장군의 부대, 그리고 김사용과 우군칙 그리고 그동안 짜놓은 안주 평양 한양의 동조자들까지 일사분란한 조망(組網)이 되었습니다."

"그렇다하나 아직은 이십 명 남짓, 세력을 더욱 공격적으로 해야하지 않겠소?"

이희저가 김사용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이십 명이란 말은 거사 계획을 확실하게 알고 동조를 한 동지들을 말한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세력을 급격하게 늘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계획을 확실히 알려야 하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형님, 그말은 나도 동감입니다. 꼭 욕심나는 인물이 있어도 그 말을 꺼내기가 참으로 어렵더군요."

홍경래도 김창시의 말에 동조를 했다. 거사를 위해 동지들을 모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말이 거사이지 반역(反逆)을 하자는 모의에 동조를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변죽만 울려가지고 언제 사람을 모으고 훈련을 시켜 군대로 만든단 말인가?"

이희저는 답답한 속내를 토로했다. 그들은 이미 수년 전 청룡사 회합에서 세상을 갈아 엎겠다는 대의를 정하고 결의를 했었다. 그리고 지난 수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으나 그 성과는 이런 것이었다.

"형님,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천 명은 모아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 않습니다. 우선 지금의 방식 대로 지휘부를 더욱 단단히 하고 군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 듯합니다."

"수천 명으론 안되네. 최소한 기만은 있어야 안주를 깨뜨리고 단숨에 평양까지 내 달릴것 아닌가?"

이희저가 큰 기침을 하며 가슴을 폈다. 언제나 원대한 꿈과 바람이 있는 인물답게 포부가 거창했다.

"대인? 군대를 모으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올곧은 대의와 단단한 지휘부, 그리고 파도가 일어날 때 힘을 더할수 있는 군자금이 마련되면 군대는 저절로 모아집니다."                   

"저절로 모아진다고요?"

"민심을 치는 겁니다. 두 대인께서 알다시피 지금 조선의 민심은 바닥입니다. 선왕 때부터 거듭된 오만의 정치로 조선 백성들은 물론, 지방의 아전들 그리고 당파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관원들까지 모두 들끓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서북의 장사치치고 관과 조정에 불만 없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동안 이 민심의 틈새를 벌리기 위해 우리가 계속 펼쳐왔던 '해서승룡 서북용출'을 잘 이용하여 민심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끓어 넘칠 때 준비된 거사 계획을 터트려 민심이 미친 듯 몰아칠 자리를 잡아 줘야합니다.  수천이 수만이되고 수만이 수십만이 되는 민심의 대홍수 말입니다."

"끄응!"

홍경래와 이희저는 김창시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시는 '육도삼략'에 나오는 민심을 움직여 국체(國體)를 흔드는 지략(知略)으로 당면한 거사의 방향을 말하고 있었다.
김창시는 시대를 읽는 눈이 있었다. 조선의 당면한 정치적 현실과 한계 그리고 정치와 민심이 괴리된 이반점을 정확하게 집고 거사에 이용하는 영민함과 치밀함도 있었다.

"참, 참언 건은 잘되고 있더이다."

이희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참언은 일종의 유언비어를 퍼트려 사회를 동요시키는 심리전으로, 홍경래부대는 얼마전부터 서북에 곧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불안심리를 퍼트려오고 있었다.

"하하, 형님, 우군칙이 워낙 말 빠르게 퍼트리고 다니는 통에 서북은 물론 황해도까지 번진 모양이더군요."

홍경래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군칙은 팔방미인이었다. 일찍부터 풍수지리를 알아 지관을 한다며 전국을 떠돈 이력으로 조선의 비기로 통하는 정감록을 이용하여 서북에 언참(言讖)을 퍼트려오고 있었다. 우군칙의 조금 부족(?)한 언참 부분은 한학과 모사에 능통한 김창시가 이론적으로 메워주어 서북 지역의 언참은 급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아우, 장사들이라도 더 모야야 하지 않을까?"

이희저가 홍경래에게 무인들을 더 모야야한다는 말을 했다. 홍경래난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 바로 이희저였다.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홍경래가 칼을 뽑아들고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방문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