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심단금야심장(祚夜心短今夜心長)이란다. 뜻으로 보아 지난밤을 뜨겁게 보내고 떠나보낸 님을 그리는 여자의 마음이 적나라하다.

노래는 서상기(西廂記)에 나오는 욕정을 주체치 못하는 여자의 상렬(相熱)이다. 서상기는 명대 이후 중국에 유행하고 있는 속문학(俗文學)의 대표적 작품으로 조선에 들어와 북상기니 동상기니 하는 아류들까지 창작될 정도로 선풍적 유행을 했다.

"박대장, 오포장 저 친구를 잘 대우하게. 포청 아전들 중에 최고라네. 그리고 이번 서북에 떠도는 참언을 잘 수습해서 공을 세워보게."

박종경이 박기풍의 술을 받으며 말했다. 기생들이 곁에서 반찬을 집어 입에 넣어 주며 간살을 떨었다. 기생들이 풍기는 분내와 잘 익은 국화주의 향기가 방안을 진동했다.

"참, 병조의 간섭은 없는가?"

박종경이 다시 질문을 했다. 포도청은 원래 병조의 소속이었다. 포청의 중요 업무의 하나가 도성의 순찰과 경계인 탓에 병조의 관리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포청이 국왕의 하명 사건과 도성안의 엄청난 범죄 사건의 처리로 형조의 간섭을 받기 시작 하면서 후대에는 오히려 형조의 아문(衙門)으로 기능했다.

한양 안의 포청은 좌우포청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좌포청(한성부 정선방)과 우포청(한성부 서린방)은 한성 5부와 주변 경기 좌우도를 관할지역으로 경계 순찰 및 각종 강절도 살인 방화 등의 범죄를 대처했다.

박기풍이 대장으로 있는 좌포청의 조직 편제는 아래와 같다. 순조 때 편찬된 '만기요람'을 참조한 내용이다.

포도대장- 정3품 또는 종2품 당상관으로 보임.

종사관 3인- 정6품 또는 정5품관으로 보임.

부장포교 4인- 기찰포졸 64인.

군관 4인- 군졸 66인.

서원(書員)- 4인. 

사령- 3인.

의생(검시관)  율관(형법 전문가) 다모(여보조원).

기타 청소 식당 잡급 노비들 수십 인.

좌포청의 편재는 오늘날의 경찰서의 그것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서장 아래 과장급인 종사관들과 계장급인 부장포교, 군관들이 사무, 경리, 검시, 형법 자문관, 여보조원 등 일사분란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대장과 종사관들은 과거를 통한 관원들로 임명 순환직이다. 포청의 일상적인 업무는 포교들과 서원들의 전문성에 전적으로 맡겨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선의 관리직 관원들은 전문성과는 무관한 사람들이고 전문성을 경시하는 풍토까지 있기에 더욱 그랬다.

조선은 질서정연한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왕실과 비변사 의정부 6조가 8도 360관(官)의 3정 관아(官衙)에는 서리(胥吏) 또는 아전(衙前)이라 부르는 직업 공무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행정, 군정, 사정(司政)의 말단에서 문서와 세금 환곡 군역 등의 임무를 기술적으로 처리 하는 도필지임(刀筆之任)을 맡고 있었다.

헌장(憲章) 조령(條令) 등 아주 복잡한 업무 분장이 있던 조선의 말단 행정은 전적으로 아전들의 책임이었고 이 아전들의 전문성을 주목하지 못한 성리학적 가치에 눈이 멀어 있던 조선 관원(지도층)들의 괴리가 조선의 비극이었다.
일찍이 성호 이익은 이점을 간파해 내고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 오늘 모든 기관에 속한 관리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바쁘고 공무에는 뜻이 없다. 여러 헌장, 조령 등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머리만 숙이고 아전 서리에 의지하며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른다.

공경대신들이 입대할 때도 서리들을 찾아 일일이 물어 일처리를 하니 이 무슨 도리인가. 그리고 입으로는 조선이 서리 아전으로 망한다고 떠든다. 내가 볼 때는 조선이 그나마 돌아가는 것은 서리 아전들 때문이라 본다. 그들이 없다면 조선의 온갖 제도와 방법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랬다. 성리학의 가치 추구에만 온통 관심을 두고 있던 상류 지도층과 세상의 모든 이익(利益)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길목을 지키고 앉아 있는 서리와 아전층의 부조화가 조선이 안고 있던 병통이자 약점이었다. 10년, 20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문가들을 불과 1~2년 임기의 관원들이 통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전문성을 천대하던 시대라면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