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용출(西北龍出).

한양은 어수선했다. 연이은 2년간의 흉년과 봄부터 남북에서 일어난 대화재는 서북용출이니 해서용출(海西龍出)이니 하는 언참이 백성들 사이에서 은연중 생겨나 쉬쉬하며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김조순의 내략(?)을 받은 박종경은 좌포도대장 박기풍(朴基豊)과 기찰포장을 좌통방 기방으로 불렀다. 공무를 관청보다 기방에서 보는 것이 박종경의 특기였다.

박기풍은 오위영(五衛營)의 중군(中軍)을 지낸 무인으로 박종경의 천거로 신임 포도대장으로 와 있었다. 담대하고 우직한 성격으로 영민하고 영악해야 하는 포도대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박종경의 심복인 덕에 경관청(한양내의 독립 관청)의 한 자리를 꾀어 찬 것이다.

"대감, 부르셨는지요?"

박기풍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군례를 올렸다. 그의 옆에는 포장 오소비(吳昭飛)가 따라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작고 마른 몸에 곱상한 얼굴이 남장 여자 같았다. 내시가 되었으면 적당했을 인물이었다.

"앉게, 오 자네도 왔나?"

박종경이 직전 포도대장을 거쳤기에 오포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부른 것도 박종경이었다.

"박대장, 서북지방에 도는 요설 말이야. 그것 좀 알아낸 거 있나?"

박종경이 박기풍에게 물었다. 그들은 같은 반남 박씨로 당금 왕실의 외가로 족척 관계였다. 한때 승하한 정순왕후의 편에 서서 김조순의 눈 밖에 났었으나 정치 감각이 탁월한 박종경의 수완으로  관계를 회복하여 조정의 실력자로 부상하는 중이었다.

"아직은…. 기찰하고 있는 중입니다."

박기풍이 원론적인 말을 했다. 그는 아직 포청의 업무파악도 되어 있지 않았다.

"여보게, 오포장 자네 생각은 어때? 그 전에도 서북에서 공을 세운 적이 있다지?"

박종경이 오포장에게 물었다. 술상이 들어오고 기생들 세 명이 함께 들어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호호, 백련방이라고 미친놈들을 토포한 적 있습니다."

오포장이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 웃음소리와 가는 목소리가 여자의 그것과 똑 같았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음산하고 차가웠다.

백련방(白嶺防)은 함경도 영변을 무대로 혹세무민하던 교단이었다. 두두(頭頭)라는 선객(仙客)을 우두머리로 하여 점서(占書)와 지술서(地術書) 등으로 정신적 무장을 하고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가 온다며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재물을 취하고 살인을 일삼다가 정조 7년에 토포령이 내려져 10년간을 끌다가 정조 말에 일망타진된 일이 있었다. 
오포장이 지관으로 위장을 하고 한양으로 들어와 있던 두두를 체포하여 효수를 시킨 일이 있었다.

"백련방? 아 무슨 굴에서 신선들이 산다며 난리치던 그놈들인 게군?"

"호호, 그건 성천에서 있었던 신선굴(神仙窟) 사건이고요. 백련방과는 색깔이 다른 놈들이지요."

오포장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오포장의 옆에 앉은 기생이 바짝 얼어 있었다. 오포장은 한양안의 검계, 기생, 상두꾼, 도고상인 등의 세계에서는 공공의 적이자 공포의 존재였다.

"신선굴? 신선들이 산다는 말인가?"

"호호, 딴은요. 남녀 합궁법으로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한다며 수십 명의 연놈들이 굴속에서 집단으로 상피를 붙던 놈들인데 저에게 아작이 났지요."

"아작?"

"호호, 추국 과정에서 대여섯 놈이 물고가 났습니다요. 상피를 많이 붙어서 그런지 뼈들이 실하지 못하더라고요."

오포장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웃음을 지을 때는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꼭 먹이를 노리는 뱀의 그것과 비슷했다.

"흐흐, 그래서 오포장의 이름이 조선에 뚜루 한 게군.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해서승룡이니 서북용출이니 하는 언참 말이야?"

박종경이 기생들의 귀는 안전에도 없다는 듯 서북 지역에 도는 참언을 거론했다. 거칠 것 없는 성격 그대로였다.

"호호, 글쎄요…. 가보기 전에는 딱히 뭐라…."

"뭐라? 가보기 전에는 모르겠다? 하하하, 하긴 그 말이 정답이군. 박대장 안 그런가?"

박종경이 박기풍과 오포장에게 직접 술 한 잔씩을 따라주며 말했다. 하급자들에게 먼저 술 한 잔씩을 돌리는 것이 김조순을 닮았다. 요즘 한참 김조순 따라잡기에 나선 박종경이었다.

"대감, 시골의 일은 아랫것들에게 맡기고 술과 게집들이나 신경 쓰시지요."

박기풍이 술잔을 비우고 박종경에게 술 한 잔을 올렸다. 그때 악기를 든 기생과 악사(樂士)들이 들어왔다. 반주가 시작되더니 기생 한 명이 청을 뽑기 시작했다.

촛불은 타고 밤은 깊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며 탄식만 하니

베개는 외롭고 이불은 차니 잠 못 이루며 뒤척이네.

어젯밤은 그리도 짧더니

오늘밤은 왜 이리도 길기만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