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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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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3)
2010-08-07 조회 4623    프린트스크랩

 

천인성명(天人性命)이라는 유학의 지음(指音)도 따지고 보면 인문학을 자연과학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유학자들의 노력이다. 유학자들은 세상만물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그들은 바둑에서도 의리(義理)를 찾아내려 한다. '현현기경'은 바둑이 천문의 반영이고, 역법의 실제이며, 유학의 본령인 주나라의 유훈이 묻어 있는 어떤것이라 말한다. 바둑만이 아니다. 유학자들은 음주가무에도 도(道)가 있고 법(法)이 있다고 한다.


술과 춤 그리고 음악과 바둑의 이해는, 유학의 시대 성인의 척도이자 품위의 기준이다. 조선은 더욱 그랬다. 이것을 갖추는 것은 양반 사대부의 체모에 관계된 것이기도 했다. 음악과 무용 그리고 바둑을 이해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교양인의 범주에 들 것이다. 악(樂)과 무(舞)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그저 술 한잔 먹고 노래방에서 고성방가하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근본이 다르다.


음악은 내면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예의는 외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 예는 겸양을 중하게 여기고 음악은 감성을 중하게 여긴다. (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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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樂記)


고성방가에 불과한 오늘날의 음주문화와 비교하면 어떤가. 춘추시대 동양의 음주문화의 일단이다. 조선시대의 악과 무는 음감과 춤의 동작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와 덕목을 부여했고 악과 무를 실현하는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공감했다. 음악과 춤을 이해할 정도의 사람은 문화인이다. 조선의 문화인은 시서(詩書)를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악무(樂舞)를 보충한 지경에 금기(琴棋)를 첨가했다. 거문고는 악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실현(實現)해야 하는 악(樂)이기에 의미가 다르다. 바둑도 실현의 그것이다.

박제가는 무상의 문인이면서 바둑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던 사람이다. 박제가가 김려를 만나 바둑의 논(論)을 갈파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를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영평에서 박제가의 따뜻한 환대를 받은 김려일행은 걸음을 재촉하여 금화, 철원을 지나 북쪽으로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박제가를 제외한 노상의 관장들은 야박하기가 그지 없었다. 어떤 고을은 양주와 마찬가지로 잠깐의 휴식도 못하도록 닥달을 했다.

"영평사또가 물건입디다."

나졸 한명이 김려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단발령'을 넘어 멀리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먼산에 하얀눈이 모자를 쓴 듯 내려앉아 있었다. 험로인 탓인지 거머리같이 달라붙던 지방관아의 아전들도 없어 길을 조금 늦춰 잡을 수 있었다.

"왜, 영평사또가 대인으로 생각되시나?"

김려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나졸들은 박제가의 환대가 그리운 모양이었다.

"그 양반이 좌상께도 덤빈 적이 있다지요? 이번에 겪어보니 대인임이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나졸대신 나장이 거들고 나왔다. 박제가는 수년전 당시 규장각 제조였던 '심환지'를 망신준 적이 있었다. 박제가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있으면서 사물로 자신이 쓸 책상을 들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 책상이 없는 검서관이 사물로 책상을 들인 것은 잘못이라 꾸짖는 심환지에게 강력 반발을 한 것이다.

사실 검서관이라 자리는 폼나는 자리는 아니었다. 자신의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은 고사하고 책상도 없는 고달픈 자리였다. 정조가 재주가 있으면서도 밥을 굶는 서얼출신 문인들을 위해 만든 임시방편적인 자리에 박제가가 만족할 수 없었다. 박제가는 기왕이면 잘해 보겠다고 규장각에 자신의 책상을 가져다 놓았고 심환지가 그것을 힐난하자 내돈으로 책상도 못 가져다 놓느냐며 책상을 엎고 만다. 이것이 박제가의 복안(覆案)사건이다. 정조는 박제가를 문책하라는 심환지의 보고에 은근슬쩍 넘기고 만다.

- 두서가 없는 인간이니 한번 봐 주자.

이 대목은 인간 박제가의 진면모라 할 수 있다. 세상을 경영할만한 포부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서얼출신이란 신분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비상한 인간의 포효가 서늘하다.


"다시 눈이군요?"

"행군속도를 더 내야 하겠네요."

나졸과 나장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맞추듯 장단을 쳤다. 김려일행은 하얀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산곡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는 주막 하나 없는 깊은 산간이었다. 바람이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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