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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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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4)
2010-08-10 조회 5045    프린트스크랩

 

 

점심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생각을 않고 계속 내렸다. 눈 때문인지 기온은 조금 올라가 있었고 바람도 한결 가라앉았다. 그러나 산곡을 지나는 협로에서는 사방 수십 보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시계는 행군의 가장 큰 적이었다.

"빨리 가야합니다. 이 협곡만 지나면 마을이 있을 겁니다."

나장이 선두에 서서 길을 잡아 나갔다. 작은 키에 뭉뚱한 몸이 잘 길들여진 '과하마'를 연상시켰다.

"후..."

김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힘든 하루였다. 깊은 협곡의 좌우측 산등선의 모습이 하얀 눈속에 진을 치고 야영에 나선 군영(軍營)을 떠올리게 했다.

 

"전하....."

김려는 독백을 내뱉으며 힘을 냈다. 그날 밤 군왕이 자신의 집을 찾아온 밤도 눈이 내렸었다. 군왕은 미행 중이었다. 시종 내관 한명과 무명천에 싼 장검을 든 내금위 한명만을 대동한 지극히 단출한 행차였다.

"전하....?"

내관의 전갈을 받고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선 김려를 군왕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자중(?)시켰다. 그들은 조용히 방에 앉았다.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닿을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방안에는 서안(書案) 하나와 수백 권의 책 그리고 바둑판 한 조가 전부였다.

"이것이 선비의 방이다. 그래 문장연습은 좀 했느냐?"

군왕은 엎드려 있는 김려를 바로 앉히고 물었다.

"저어...."

"저어할 거 없다. 익힌 소품을 어찌 그리 바르게 고칠 수 있겠느냐?  근자에 뭐 좀 써 놓은 건 없느냐?"

군왕은 김려의 글짓기를 물었다. 군왕은 산림(山林)의 영수이자 도통군자였다. 당시 군왕의 관심사항은 온통 조선 백성들의 글짓기였다.

 

영고도의 한 장면. 정조는 아버지 사도의 바둑추억을 화원들로 하여금
10폭 병풍으로 남기게 했다.
이 그림은 필자가 처음으로 지면에 공개한 작품이기도 하다.

 

군왕은 성균관 유생들 중 김려 강이천 그리고 이옥 등의 문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출중한 문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군왕은 이들이 모두 소품체(小品體) 문장에 빠져 있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옥은 군왕의 교정지시에도 불구하고 소품체를 고집하다 유배를 가 있었고 김려와 강이천은 성균관 책임자 '이병정'의 지도하에 교정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군왕의 지시였다.

"요즘은 경서를 읽느라 글짓기를 소홀히 했나이다."

"그런가? 하긴 선비는 경서가 우선이니...오 바둑판이 있구나. 니가 바둑을 잘 둔다더니 과연 그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전하 황송하옵니다."

"아니다. 나는 바둑을 잘은 모르지만 바둑을 보면 아픔이 있기에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 ...?"

"임오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바둑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바둑을 둘 때면 어린 나를 불러 그것을 보게 하셨지. 저걸 가져 오거라."

군왕은 김려에게 바둑판을 가져오게 했다.

"전하?"

"가져오라니까."

김려는 군왕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바둑판을  군왕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비자나무 바둑판이었다. 김려는 이 바둑판을 해남윤씨 문중의 사람에게서 선물받은 것이었다. 윤씨문중의 선산에는 수백년 된 비자나무 군락군이 자생하고 있어 좋은 바둑판도 나온곤 했다.

"음, 좋구나."

군왕은 바둑판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향이 방안에 가득하여 마치 차를 끓이는 듯했다. 군왕에게 임오년은 화인(火印)이었다. 군왕의 임오년은 술 바둑 활쏘기를 좋아하고 누구보다 어린 군왕을 사랑하고 아끼던 아버지 '사도'가 비참하게 죽은 죽어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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棧道 |  2010-08-11 오전 7:58:5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달려라 김려 !.
불굴의 의지가 생각납니다. 한 선비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려집니다.  
棧道 |  2010-08-11 오전 8:00: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려 인터넷검색을 해 보니 굉장한 사람이었군요. 정조시대 인재들의 숲이였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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