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극장인 연경당은 순조27년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 주도로 '진장각' 옛터에 건축되었다. 진장각은 왕실의 골동품과 서화류를 보관하던 창고로 창덕궁 후원에 위치하여 궁 바깥과 차단되어 왕실의 비밀(?) 연회에 적합한 곳이었다. 연경당은 ㄷ자(字) 구조로 넓은 건물과 마당까지 있어 '보개'와 '치알'을 치면 훌룡한 무대로 변하는 곳으로 아직도 창경궁 안에 건물의 원형이 살아있다.

"김공... 잠시만요."

"......?"

"휴.. 잠시만..."

김윤식은 춤을 추고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팔소매를 끄는 허욱을 따라 무대 뒤로 갔다. 무대 위에서는 장악권 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기녀들이 무더기로 올라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자 연경당은 온갖 꽃이 만발한 화원을 방불케 했다.

"뭡니까?"

"뭔지라니? 전하를 좀 즐겁게 모시지 못하오?"

"네에?"

"당신이 전하를  붙잡고 청국이니 문명이니 하며 똥밟는 소리만 하니까 전하께서 술맛이 나시겠소? 계집들 분내가 나시겠소?"

"......?"

"눈치 좀 있어 보시오. 샌님 흉내나 내지 말고. 츄츄."

허욱이 김윤식의 어깨를 툭하고 치면서 다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김윤식은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예의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인사였다.

니나노 니나노.

니나노 좋다.

만가지 꽃 중에 사람꽃이 좋고요.

만가지 술 중에 두견주가 좋다오.

니나노 니나노.

니나노 좋다.

악단의 반주가 가늘고 높았다.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으로 치닫는 반주는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군왕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기녀들을 바라보았다. 조선의 군왕 28명 중 희노애락에 가장 대응을 잘했던 군왕이 바로 그였다. 군왕은 수습기간이 없이 권좌에 오른 경우다. 조선의 군왕들 중에서 선조 영조 인조가 그런 경우다. 수습기간이 있다해도 순조 같은 무능한 군왕이 있는가 하면 수습기간 없이도 영조같은 '현군'이 되기도 하는 것이 통치의 세계니 깊게 따질 일은 아니다. 참고로 말하면 가장 알찬 수습기간을 가진 군왕은 정조고 그렇지 못한 군왕은 영조다. 철종도 영조 못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