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는 일본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어 있었다. 민비는 호기심이 많고 학구열도 있는 편이었다. 야사는 민비가 잠행을 한 60일간의 시간을 홍계희라는 무장의 등에 업혀 도성을 빠져나간 후 이용구라는 철각의 힘을 빌려 도성안의 자파에게 계속적으로 연통을 하며 도성정치를 좌지우지한 것으로 그린다. 특히 정사-민비를 타이틀로 내세운 온갖 드라마는 홍계희의 등짝에 얼굴을 묻은 민비의 몽롱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 장면을 자극적으로 만들기 바쁘다. 그러나 민비의 60일간의 잠행 중에 홍계희도 이용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한 시골선비의 몰골이라 해도 민비의 잠행에 도움이 된 사람은 기록에 등장하는 마당에 홍계희나 이용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이용구는 보부상 출신으로 달리기에 특기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이용구가 민비의 장행 기간에 발탁이 되어 충주 한양 간을 바람처럼 내달리며 민비가 내리는 지령을 도성안의 민비세력에 전달했다는 말은 코미디다. 코미디는 한발 더 나가 민비가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후 이용구는 민비의 후원으로 조선 상권을 틀어쥔 최고의 갑부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7월 2일.

흐리다. 청군이 도성안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들어오게 했다.

민비는 잠행 중에 도성안의 정치적 변동 상황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청나라 군대가 도성안으로 진군한 사건을 귀소문으로 듣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시장(市場)으로 보내 염탐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며칠전 민비에 대한 두 권의 책이 동시 출간되었다. 두 권 다 역사학자들의 손을 거쳐 출간된 책들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민비가 잠행 중 연경에 사신으로 가 있는 김윤식에게 서신을 보내어 청군의 원병을 시도해 성공시킨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절망(?)을 느낀다.도무지 학자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김윤식은 '속음청사'라는 방대한 자작물을 남긴 사람이다. 역사학자로 구한말의 책을 낼 정도라면 속음청사는 기본적으로 읽어야할 기록물이고 이와 더붙여 단 몇 쪽에 불과한 임오일기를 검토했다면 저런 소설 같은 글쓰기는 할 수 없다. 참으로 한심한 학자들도 많다. 속음청사나 임오일기들을 읽지 못했다면 그들이 게으르거나 아니면 한문에 까막눈인 탓일 게다.

임오군란은 1882년 5월말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여 6월8일 영의정 이최응이 양 군영이 아닌 '별파진'을 동원하여 양 군영을 진압할 것을 군왕에게 주청한 날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양 군영의 일단의 군졸들은 이미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여 상당량의 쌀을 나눠 가져다 먹었고 과정에서 폭동이 일어난 상태였다. 녹봉에 불만을 품은 하급군졸들의 폭동이란 말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평가는 너무도 편리하고 한가하다. 군란 후 즉각적이고 전광석화로 정권을 잡은 대원군 세력의 일사분란한 대처는 그들 세력의 준비가 얼마나 치밀했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오군란은 군란이 아닌 대원군의 쿠데타로 정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조선은 효를 강조하는 유교국가인지라 대원군의 쿠데타를 기록하기에 적절하지 못했다. 시대를 정리하는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어용이기 마련이다. 어용학자여야만 당대의 정권에 빌붙을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의 곡필로 쓰여진 역사는 항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효도를 강조하는 국가에서 아버지의 쿠데타를 기록하기는 애로가 많았던 것이다. 하여 만만한 게 홍어 뭐라고 힘없고 무지한 군졸들 백성들의 폭동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