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니가 제법 풍류를 아는구나. 민진사 안 그런가요?"

민비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민응식이 황송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아기 궁인의 노래가 어느 가인 못지 않은 듯하옵니다."

"가인요? 호호 맞네요. 이 아이 노래에 재능이 있지요. 그건 그렇고 민진사는 바둑이 뭐라 생각하나요?"

"네에?"

"바둑이 뭐냐 물었네요?"

"그건...잡기 아닐는지요?"

"잡기요? 그렇지요. 바둑은 하찮은 잡기지요. 그런데 민진사?"

 "네에...중궁마마 말씀하시지요."

"혹 만엽집이란 책을 아시오?"

민비는 민응식에게 존대와 하대의 중간을 택했다. 국모는 아랫사람들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 법이었으나 사가(私家)라는 친척 관계에는 다소 예외가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민응식은 촌수로 따져 민비의 아저씨가 된다.

"만엽집이라시면...과문하여 처음 듣는 책이옵니다."

"호호, 그래요. 만요쇼라고 일본의 시가집인데 그 책에 이런 노래가 있네요. 애야?"

민비는 궁년에게 방 한쪽에 놓여 있던 서안을 가져오도록 했다. 서안 위에는 붓과 먹 그리고 벼루와 종이가 가지런했다.

민비는 종이를 펼쳐놓고 그 위에 이미 잘 갈려 있던 먹물을 듬뿍 찍어 글을 써내려 갔다.

(위기가 비록 잡기라지만

위기는 능히 저승길도 친구하지)

"......!"

"어떤가요? 일본이 왜국이고 일본인을 왜놈이라 하지만 우리가 잡기라는 바둑을 저승길 친구라 말하는 것은 놀랍지 않나요?"

"이 시가 정말 일본인들이 지은 거란 말씀이옵니까?"

"왜요? 일본인들이 기술은 뛰어나도 문과 학은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가요?"

"그건 저...."

"문과 학도 부족하지 않지만 기술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멀리 앞선 나라가 일본이지요."

민비는 독서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민치록에 사서를 배우고 궁에 입궁한 뒤로 십여년 간을 독수공방으로 보내면서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 풍부한 지적 소양을 습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