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노래 속에 '바둑을 두며 백만 들고 두는 우(憂)'라는 말이 주목된다. 이 말은 조선실록에 아주 흥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등장한 말이기도 하다. 인조는 인조실록에 이렇게 말한다.

바둑을 두면서 백만 들고 두는 것 같이 상대를 모르고 싸우는 것은 병법이랄 수 없다.

(亦只以白杖受點其不知兵可知也.)

인조는 서북해도인 가산도(島)를 점거하고 조-청 간에 외교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문룡'을 소탕하는 작전을 정충신과 상의하며 바둑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정충신은 서북 방면의 병마사로 모문룡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명령만 내려오면 하시라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각오를 말하자 인조는 백번을 연구하고 궁리해도 부족한 것이 병법이라며 백만 들고 두는 바둑을 말하고 있다.

정충신의 충만한 자신감에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건 바둑을 두면서 백 혼자만의 생각이란 것이다. 상대의 수와 의중 작전 등을 간과한 채 혼자만의 생각으로 두는 바둑은 이길 수 없다. 독선으로 상대가 있는 실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독선은 오판을 부르고 오판은 낭패를 부르기 마련이다. 

정충신은 훗날 대청국의 공격을 당하여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보위한 무장이다. 정충신의 집안에는 병자일기라는 한글본 문서가 한 편 전해오는데 청군에 포위된 남한산성의 내용이라 주목을 끈 바 있다. 필자도 이 문서를 본 적이 있는데 한문보다 더 어려운 한글(?)이라 도무지 해독불가여서 두 손을 든 적이 있다.

"호호 들을수록 재미있구나. 한번 더 불러 보거라."

민비가 오얏꽃이니 뭐니 하는 다소 불손(?)한 가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촉했다. 궁녀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청을 뽑았다. 어린 성대(聲帶)에서 나오는 소리인지라 가늘고 높고 고왔다.

"올커니, 오궁도화는 살 수 없지. 그러나 가일수를 할 수밖에..."

민비는 궁녀의 노래에 장단을 치며 말했다. 두 손은 박수까지 칠 정도였다.

꽃 같은 오궁도화는

죽노~니.

꽂같이 아름다운 오궁도화는 죽지만 흉수가 낀 사목은 산다는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바둑의 노래는 민간에 전해지는 잡가 외에도 당대의 유력자인 선비들의 문집에는 대량 수록되어 있다. '정원용'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원용은 철종 말기와 고종 초기 영의정을 지낸 유력자로 바둑에 관한 기록을 유달리 많이 남긴 사람이다.

정원용은 특히 바둑 연시를 좋아하여 주변에 몰려드는 추종자들과 더불어 수많은 바둑 연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양반사대부들의 한문 가사와 민간 구전 가사의 그것이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한문과 한글의 철벽과 같은 간격도, 음과 율 그리고 신명이라는 원초적 감정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