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는 충주까지 내려와 있었다. 도성안에서는 대원군의 주도로 중전의 장례까지 치룬지라 그녀는 공식적으로 죽은 몸이었다. 민비가 여주 이천 광주와 충주 근방을 떠돈 이유는 그곳이 자신의 고향이자 집안 연고가 있어 몸을 숨길만한 곳과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비는 충주로 들어가는 한 시골 사가(私家)의 뒷방을 얻어 숨어 있었다.

민비를 계속 수행한 사람은 민응식이다. 민응식은 선비였지만 재담에 능하고 바둑을 잘 둔 모양이다. 민응식이 궁녀와 바둑을 두면 민비는 그 옆에서 반상을 지켜보며 쫓기는 자의 불안과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호호, 과연 이 말은 어쩌누?"

민비가 순식간에 눈을 파호 당하고 오궁도 모양을 하고 있는 대마를 바라보며 궁녀에게 말을 했다.

"어머? 이런..."

"오궁도는 불생이라...너는 기가(碁歌)도 모르누?"

"마마, 진사님 말을 노리다가 그만...죄송하옵니다."

"호호, 바둑에 아생연후한 후에 살타라는 말도 모르니? 얘야, 기가 한번 불러보렴?"

민비가 궁녀에게 노래 한 곡조를 뽑을 것을 지시했다. 민비의 옷이나 궁녀가 입은 옷이나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민비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했다.

두 눈이면 살고

한 눈이면 죽느니

죽고사는 바둑은 우리네 삶이지.

흉한 사목(四目)은 살아도

꽃같은 오궁도화 죽느니

아이야

바둑 안다면

백돌만으로 두는 우를 범하지 마라.

(白杖受點不知憂)

사목은 설명할 필요 없는 바둑용어다. 4집이 연이어 있는 모습이니 죽는 형태가 아니다. 사자(四字)가 들어가 있어 흉한 용어라 말하지만 오얏꽃 모양의 보기 좋은 오궁도의 모습은 살 길이 없다는 가사의 내용이 시사적이다. 오얏꽃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이유도 있기에 몰락하는 왕조를 조소(?) 하는 의도도 들어 있는 듯 하다. 이 노래는 필자가 발굴(?)한 것이다.

이 노래는 신재효가 작사작곡한 바둑의 노래와 함께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또 다른 바둑의 노래다. 민비는 롤러코스터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일생일대의 순간에도 이렇게 태연하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민비란 여인의 진면모를 보게 된다. 민비는 결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