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일기는 충주에 사는 민응식 후손의 집에서 불과 수년 전에 나온 기록으로 민비와 임오군란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 자료다. 임오일기는 민비가 도성을 탈출하여 환궁하던 60일간의 행적을 측근이 일기체로 기록한 것으로 사실성이나 현장성에서 그 어떤 자료도 따라올 수 없는 객관성 있는 신뢰도 높은 자료다.

임오일기는 민비가 피난 중에 청군에 도움을 요청해 청군의 도성진입을 시도했다던 그동안의 학계의 주장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 자료에 나타난 민비는 도피 60일간 겨우겨우 목숨만을 연명하는 초라한 아녀자의 몰골에 불과하다. 원명 '임오유월일기'라 쓰여 있는 이 책은 8쪽의 행초서로 1882년 6월13일부터 8월1일까지 총 51일간의 민비의 활동상황과 행적이 살아 있다. 그 중 몇 편을 살펴보자.

6월13일.

맑다. 2경(更)쯤 중궁전하께서 벽동의 민응식의 집으로 가셨다.

옥체는 감기증세로 좋지 않으시다. '박하유'를 올렸다.

이 내용으로 볼 때 작가가 민응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민응식이 충주 근방에 살던 선비였으니 민비는 13,14일 양일간 경기도 광주에서 여주를 거쳐 충주까지 강행군을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반군의 추적을 피한 행보임은 물론이다. 민비는 이날 민응식을 만나 계속 그의 도움을 받는다. 임오일기는 민응식과 민비를 동시에 아는 어떤 사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필자의 생각은 여자로 보인다.

6월17일.

맑다. 더웠다. 오후엔 소나기가 왔다. (왕비께서) 머무르셨다. 감길탕 한 첩, 박하탕 한 첩을 더 올리니 드셨다. 다리에 부스럼이 생겨 고약을 붙여 드렸다.

6월14일의 기록은 민비가 민응식과 여종 1명의 도움을 받아 광주 취적리에 살고 있는 전 임천군수 '이근영'의 집을 들러 점심을 얻어먹고 '조현원'의 허접한 숙소에서 잠을 해결한 것으로 나온다. 민비는 갑작스런 강행군에 발에 물집이 생기고 곪아 치료를 요하고 감기증세까지 있어 고생이 막심한 모습이다.

15일 민비는 새벽안개를 뚫고 다시 움직이고 있다. 이천 근방의 주막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여주를 지나다가 민응식이 아는 '권삼태'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진다. 이곳으로 부근에 사는 전 오위장 '민영기'가 찾아온다. 한마디로 민비의 행로는 고난의 길이다. 불식간에 궁궐로 침범한 반군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와 필사적으로 생로를 찾는 그녀의 모습은 두 눈을 낼 길 없는 바둑판 위의 미생마의 모습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