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의 시대에는 혁명이 있다. 그러나 혁명은 그 정신을 바꾸는 것이지 형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행한 근래의 시계(詩界)혁명이 그렇다. 세상을 선동하는 온갖 혁명이라 말하는 것들은 결국 청나라의 변법유신(變法有新)과 같은 것이다. 낡은 품격으로도 새로운 뜻과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혁명을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근래의 사람 중에 새로운 이상을 잘 마무리하여 구풍습에 집어 넣은 사람이 바로 황준헌이다.

- 양계초 음영실시화

양계초는 황준헌을 이렇게 표현한다. 양계초는 2세기초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유대치와  비교할 수 있겠다. 양계초의 삶은 자못 혁명적이고 투사적이다. 양계초는 담사동, 강유위 등과 1898년 '무술병법'을 주도하다 일본으로 망명하는 풍운의 삶을 산다. 담사동은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모두 황준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양계초는 황준헌이 창간했던 신문의 주필을 맡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황준헌을 다시 보게 된다. 그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조선책략'이란 조선개화의 어드바이스를 받아낸 김홍집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동아시아의 미래와 중국과 조선의 현재를 논하는 자리를 주선한 이동인도 다시 보게 된다. 동시에 뒤죽박죽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구한말의 역사에 답답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마마께서 읽으셨단 말인지요?"

김옥균이 고대수를 마마라 불렀다. 궁의 나인을 바깥 사람들은 곧잘 마마라는 존칭으로 부르곤 했다. 마마는 궁과 관련된 윗사람을 부르는 일반적 호칭이다.

"몇번을 읽었지요. 전하께서 이 책을 궁안에 푸셔서 거의 모든 궁인이 읽은 거지요. 저는 변환관이 추천하여 읽게 되었네요."

"변환관이요?"

김옥균이 말하는 변환관은 '변수'를 말하는 것으로  김옥균과 소통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개화파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훗날 갑신정변으로 함께 화를 입기도 한다.

"네."

"변환관은 대전에 있지 않던가요?"

"대전설리는 유재현이고요. 변환관은 내탕금관리로 자리를 옮긴 지 오래입니다."

"오...  내가 성의가 없었군요. 이런...."

대전설리는 군왕의 사적비밀을 담당하는 내관으로 은밀하면서도 힘이 있는 자리였다. 어떤 내관은 대신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였다.

"마마?"

"네, 말씀하시지요."

"마마께서 개화에 뜻을 가졌다 하시니 유환관과 만나게 해주시오. 그럴 수 있겠소?"

김옥균이 고대수에게 청을 넣었다. 고대수가 '불감청 고소언'이라는 듯 기쁜 표정을 지으며 화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