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안에도 사람을 심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이규완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했다. 여간해서 묻지 않고 반문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취기가 오르자 이규완도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사람을 심는다...?"

"양 군영의 적개심이 민씨척족을 향하고 있으니 끝내 내전으로 번질 것 아닙니까?"

"... ...!"

"어찌 생각하는지요?"

김옥균은 거듭하는 이규완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얼마전에 하나부사에게 선물받은 연초를 말아 짧게 잘라놓은 담배로 도성안에 인기가 높은 물건이었다.

"자네들도 한대씩 해봐. 이게 일본에서 만든 담배라는 걸쎄."

김옥균은 세 사람에게 담배를 한대씩 돌리고는 연기를 한모금 빨아 방안에 내뿜었다. 담배연기가 안개처럼 방안을 맴돌자 김옥균은 그 연기 속에 민비를 떠올려 보았다. 김옥균도 먼발치에서만 몇번 본 철혈여인이 민비였다.

- 명성왕후는 조선여인으로 모든 미를 갖춘 여인이다. 크지 않은 키에 가냘픈 허리, 희고 갸름한 얼굴의 소유자다.

반짝거리고 영롱한 까만 눈동자가 특히 아름다운 여인이다. 윤기가 흐르며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어느때면 바람에 하늘거린다.

왕후는 취미도 다양하다. 옷가지 액세서리 화장품 등에 많은 신경을 쓰고 오락에 폭이 넓고 관심이 많아

그의 주변에 예인이 들끓었다.

가무음곡(歌舞音曲)을 수시로 베풀었고 그럴 때면 흥에 겨운 왕후는 손가락 장단으로 흥을 맞추며 즐거워했다.

이 글은 민비의 주치의였던 '애니엘너즈번커'가 남긴 기록이다. 이외에도 민비의 외모를 증언하는 기록은 몇 점 더 있다. 전하는 민비의 사진 한장의 진위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학계의 민비연구는 보잘 것(?) 없다. 해서 전해오는 복수의 필자들의 민비기록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유추해 보면, 민비는 천상 조선의 미를 갖춘 여인이다. 동양여자의 보편적 미(美)의 기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귀엽고 앙증맞은 여자로 보면 되겠다.

"궁안에 사람을 심는다... 그게..."

김옥균은 술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술수는 선비나 협객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저의 상점에 물건을 사러오는 궁녀가 한명 있는데 이 여자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규완은 보부상의 일원으로 도성안에 세 곳의 점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모두 수하들을 두고 운영하는 것으로 재력가라 할만했다.

"궁인이?"

"고대수란 상궁인데 이 여자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규완은 '고대수'를 말했다. 고대수는 대전설리 밑에 있는 궁녀로 키가 1미터70에 힘이 장사로 남자 몇을 당해낼 수 있다는 소문의 여자였다. 대전설리는 궁안의 조직편제에서 군왕을 가장 지근에서 보필하는 측근내시의 장(長)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