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치와 김옥균이 주동이 되어 박회를 열게된 것은 김옥균파와 김홍집파가 크게 균열하는 것을 막아보고자 짜낸 고육책이었다. 이동인과 김홍집의 갈등은 개화파 안에서 골칫거리였다. 김홍집 추종자들은 이동인을 불쌍놈으로 치부하고 앙앙불락했고 이 틈에서 '조선책략'을 문제삼은 수구파들은 개화파 전체를 공격하고 나섰다.

'조선책략'은 중국인 황준헌(황쯔시엔)이 쓴 책이다. 1880년 7월 김홍집을 단장으로 한 조선의 일본 시찰단이 도쿄에 입성했을 때 김홍집이 먼저 청국공사 '하녀장(허루장)'을 만나 조선의 외교전략에 대한 자문을 했는데 이 대화 과정을 하녀장의 참모인 황준헌이 서류로 작성했다가 책으로 발간을 한 것이다.

'조선책략'은 내용이 정치하고 동아시아를 둘러싼 당대의 국제관계가 잘 나타나 있어 조선조정의 환영을 받는다. 국왕은 물론 민비세력과 개화파 인사들까지 두루 읽고 권장될 정도였다. 그러나 책자의 사소한 문장을 트집잡아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리며 조야가 시끄럽자 평소 김홍집에 불만을 품고 있던 수구파들이 조직적인 공격에 나선다.

"이공이 운현궁까지 출입을 한단 말인가?"

김옥균은 자신의 집에서 이규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규완은 김옥균의 지시로 이동인의 신변보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공이 박회에서 이겼습니다. 일본돈 천 원을 챙겼고요."

"대원위께서 순순히 내 주시던가?"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운현궁의 고수는 김만수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그를 이겼다는 말이지? 설마 규완이 자네가 상대한 건 아니지?"

김옥균이 이규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규완은 김만수에 필적할 정도의 바둑 실력이 있었다. 훗날 '본인방 수영'에게 몇 점 바둑으로 버틸 정도의 기력을 소유한 김옥균을 넉 점까지 접는 기력이었다.

"아닙니다. 이공이 말로 내세운 사람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인?"

"네."

"그러고도 이공이 운현궁을 무사히 나왔단 말이지?"

김옥균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원군은 이동인 정도는 독단으로 결딴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대원군의 심기를 건들고 무사한 사람은 조선에서 국왕뿐이었다. 대원군은 국모라고 해도 사정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원군은 수년전 민비의 오라비인 민승호에게 뇌물로 위장한 폭탄을 보내 황천(?)을 구경시킨 혐의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대원위와 독대를 하던데요?"

이규완은 대원위라 말했다. 대원위는 대원위대감의 존칭이었다.

"독대를? 이공은 지금 어딨나?"

"거처까지 호종을 하고 오는 중입니다."

"그래, 일본인은 이토라고 하지 않던가?"

김옥균이 이토 스께유끼(伊東祐亨)를 물었다. 일본 공사관에는 바둑고수 한 사람이 건너와 있었다. 그의 이름이 이토였다.

환재 박규수의 초상화.
박지원의 손자로 대원군의 인정을 받아 정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구한말의 선각자적 행정관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