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박회(博會)

조야가 들썩이고 있었다. 조정은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법썩였고 도성 안은 양반상놈 가리지 않고 일제히 한 사람을 지목하여 규탄일색이었다. 규탄의 논조는 없었다. 타당한 이유도 없었다. 그저 천하의 역적이요 죽일놈이었다.

- 일본과 친교해야 함은 무슨 이유인가? 중국 말고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이 서양에 땅을 잃으면 조선도 땅은 보존할 수 없고 조선에 변고가 생기면 일본이 구주사국(세계)을 차지하는 것도 허망한 일이다.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이렇듯 중요하다.

이 말은 '황준원'이 쓴 '조선책략'에 김홍집이 한 말이다. 김홍집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청국의 일본공사와 나눈 대화를 배석자였던 '황원준'이 책으로 엮은 것이 조선책략이다. 조선책략은 당대의 동아시아의 정국 속에서 조선이 취해야할 입장을 조선과 청나라의 엘리트들이 논의한 대화록으로 조선에 소개되는 즉시 반향을 일으킨다.

조선의 국왕은 물론 조야의 많은 식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에 책자가 조선으로 퍼져나가면서 이 책의 단편적 내용을 문제 삼은 수구파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공격거리는 김홍집이 지나치게 일본적이란 것이었지만 공격을 위한 공격거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김홍집이 곤경을 치루는군요."

박영효가 김옥균의 사랑에 놀러와 말했다. 박영효는 요즘 거의 매일 김옥균과 붙어 있었다.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닌데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고 있으니 원..."

김옥균이 한손에 든 기보(棋譜)를 보며 바둑판에 돌을 놓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나이 차이가 많았다. 박영효가 김옥균보다 열 살 아래였다.

"우리가 이리 손을 놓고 있어 되겟습니까?"

박영효가 들고 있던 부채를 방바닥에 놓으며 말했다. 여름이 지났는 데도 더위는 여전했다. 여름과 가을이 반쯤 뒤섞인 날씨였다.

"우리가 거들면 저들의 공격은 더할 것이오. 그것이 걱정이지요."

김옥균이 말했다. 나이는 박영효가 한참 어리지만 박영효는 김옥균보다 품계가 높은 당상관이었다. 더구나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사위)로 국왕의 신임을 받는 외척이었다.

"그렇다해도 무엇인가 손을 써야 하지 않을는지요?"

박영효는 김옥균이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박영효는 직선적이고 의리를 앞세우는 행동파였다.

"그렇긴 한데..."

'고균, 이럴 것이 아니라 선생에게 가봅시다."

"관철동에요?"

"선생이라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박영효가 말하는 선생은 유대치(劉大致)다. 유대치의 집이 광통교 부근인 관철동에 있었다.

"하긴...선생 본 지도 오래니 박부위(박영효의 관직) 말대로 합시다."

김옥균은 박영효의 말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사람은 각자 사인거를 타고 관철동으로 향했다. 관철동은 훗날 한국 현대바둑의 태동지가 되는 한국기원이 설립된 자리다. 유대치의 집에는 많은 조선의 재사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이 사랑방에서는 무상으로 바둑이 두어졌었다.

유대치의 최후의 흔적
전남 장성에서 발견된 묘비로 백의 유대치, 본명은 홍규로 되어 있다. 윤홍기로 알려진 유대치의 본명도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조국의 근대화의 선두인 인물의 출신성분도 아직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학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