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벽상검 3회/ 1장 하수(河水)에서 (3)
Home > 소설/콩트 > 이청
벽상검 3회/ 1장 하수(河水)에서 (3)
2008-12-05 조회 5376    프린트스크랩
 

 

바둑은 장고(長考)였다. 반상을 주시하는 두 사람의 고수는 깊은 침묵의 시간을 덮어쓰고 있는 돌부처마냥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가늘고 여리게 울리는 거문고의 선율이 구경꾼들의 오감을 위로하고 늦은 여름밤의 훈풍은 반상의 쟁투를 더욱 채근하는 듯했다.


"흐음!"


대원군은 작은 기침을 하며 한쪽 무릎을 세우고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한손 안에는 작고 보드라운 흑백 바둑알 두개가 들려 있었다. 대원군은 손이 심심한 듯 바둑알을 손안에서 굴렸다. 열어놓은 장지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대원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 한 구절을 읊조렸다. 그는 요즘 장서각 도서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조의 작품인 홍제전서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물이 안고 돌아 흐르는 빈 정자가 몇이던고 / 幾處空亭抱水環

그대 이제 주인 되어 돌아감을 보겠구나 / 見君今作主人還

고깃배는 빗속에 저녁 조수를 따라오고 / 漁舟帶雨隨潮晩

바둑판은 주렴 아래서 온종일 한가하겠지 / 棊局當簾盡日閒

의당 하호에서 늙기를 기다림은 괜찮지만 / 宜把賀湖差待老

중늙은이처럼 완전한 반백 아님이 혐의로워라 / 却嫌潘鬢未全斑

와유정에서 좋은 경치 전해 주기 무방할 테니 / 臥遊不妨輸眞境

저녁풍경 화폭에 담기를 아끼지 마소 / 莫惜幽居入畫間

-홍제전서



이동인(李東仁)은 대원군이 읊고 있는 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군은 홍제전서에 들어있는 정조의 바둑시를 한편 읊조리고 있었다. 정조는 다섯 편의 바둑시를 지었고 여러 편의 바둑글을 남긴 바 있다.

역시 거인이었다. 세상이 그를 일러 대로(大老)라 하는 이유가 실감났다. 대원군이 정치에서 물러나 운현궁에 칩거한 지 8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대원군은 8년 전 성균관 유생 이세우(李世憂)가 올린 상소로 대로(大老)라는 존칭을 정식으로 부여받았다.


- 정도를 보호하고 사악함을 배척하는 것은 공자의 도리입니다. 신들은 공자의 책을 강론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본받고 있으니 지금 대원군의 공덕을 칭송하는 것은 떳떳한 양심의 산물입니다. 맹자에 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라 했나이다. '백이'와 '태공'을 말하는 바 대원군의 작호를 대로라 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고종실록)


이세우는 성균관 유생들의 대표였다. 조선 유학의 청태 같은 존재들인 관학유생들이 연명으로 대원군을 백이와 태공망에 비유하며 존경(?)의 마음을 표한 것이다. 대원군은 이 일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알았다. 불식간에 섭정왕이 되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온갖 영욕의 파도를 다 겪은 그였지만 어린 유생들의 단결된 추증은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지 한달 만에 대원군은 면암 최익현의 탄핵 상소를 당하는 치욕을 당한다. 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거친 언사였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운영자55 |  2008-12-03 오후 12:28: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말은 휴업입니다.....평일 5회 연재합니다. =3=3=3=3  
嶺山嶺 |  2008-12-05 오전 6:45: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즐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사랑숙이 |  2008-12-10 오후 4:27: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이청선상님 글은 언제봐도 잼있어용..........  
내사랑숙이 면암 최익현.........나작에서 본거 같아용.....
달선공팔 |  2008-12-21 오후 6:33: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대원군이 정치에서 물러나 운현궁에 칩거한 지 8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믕...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나봅니다.  
AKARI 역사는 돌고 돈다니께요.
달선공팔 ^^
당근돼지 |  2008-12-30 오후 3:21: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