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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상검 2회/ 1장 하수(河水)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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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상검 2회/ 1장 하수(河水)에서 (2)
2008-12-04 조회 5117    프린트스크랩
 


세상이 어둡고 더웠다. 굳이 책력을 살필 이유도 없었다. 군왕은 년치(年稚)했고 나라안의 백성들은 탐리와 기아에 내몰렸다. 곳곳에서 아사하는 백성들의 부음이 파발을 타고 팔도 군도를 내달렸고 출몰하는 화적의 출현은 조정의 일과를 방해했다. 강상의 법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먼지만 풀풀거렸다.


무덥고 후덥지근한 밤이 한참을 지나서야 야기(夜氣)가 살아나 시들었던 남성이 꿈틀거릴 때 쯤, 바둑은 시작되었다. 대로(大老) 이하응과 금위영대장 이영하가 말로 세운 두 기객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고 양 옆 자리에 대원군, 이영하, 김병학이 바둑판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판돈이 물경 은화 천 냥이었다. 은화 천 냥이면 능히 한 고을의 굶주린 백성들을 1년은 먹여 살릴만한 돈이었다. 대원군과 이영하의 세도와 재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지나친 판돈이었다. 구한말의 최대의 투전판이라 할 만했다.


따악!


바둑판을 일타하는 소리가 대원군의 저택 운현궁 안에 울려퍼졌다. 첫수를 놓는 기객의 손이 바둑판에서 떨어지자 약속이나 한 듯 어디선가 거문고의 타성이 들려왔다. 바둑 대국에 거문고 연주를 가미하여 즐기는 대원군의 취미였고 당시대 문인들의 호사였다.


"휴..."


천 냥의 은자를 놓고 벌이는 한판 바둑판 위로 누군가의 깊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승부의 짜릿함과 승과 패라는 극단의 미래가 주는 호기심은 담력이 없는 심성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느릿느릿 시작된 초반이 지나자 돌이 놓이는 소리와 거문고의 타성이 점점 빨라졌다. 악기가 뱉어내는 비음과 바둑판의 긴장감에 이영하를 수행(?)하고 온 이동인은 눈을 감았다.  잘은 모르지만 바둑과 거문고의 울음이 궁합이 잘 맞는다 생각했다.


느리고 빠르며 태어나고 사멸하는 온갖, 세상사가 있는가 하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사까지 담겨 있는 바둑의 속성을 거문고가 아름다운 선율을 내어 위로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동인은 대원군이 손님들을 위해 내놓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찻물이 상극이 되어 오히려 뱃속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김동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차의 맛과 음악을 음미했다. 바둑판의 격렬하면서도 차분한 쟁투가 악기의 타성과 함께 뜨거운 찻물을 타고 온 몸으로 운반되어 기와 혈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 소리는 안온하고 부드러웠다. 분노와 슬픔은 없었다. 지금 바로 대원군의 담 밖을 사는  한양의 서민들이 굶주림에 떨고 있지만, 그것은 담 밖의 사정일 뿐이었다. 나생문은 붓다의 시대부터 있었다. 지금은 한판의 승부가 중요하고 그 승부에 이영하를 이용한 투전판에서의 자신의 이익이 달려 있을 뿐이다.


이동인은 다시 눈을 떴다. 대원군의 눈빛이 빛났다. 거의 밤짐승의 눈빛이었다. 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을 가능케 한 세력가인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픈 것인가. 열어 놓은 창으로 청승한 푸른 별들이 보였다. 바람 한줄기가 시원했다.


이동인은 그 바람이 좋았다. 한 모금 길게 호흡을 했다. 들이마셨던 공기가 온 몸으로 스며 들었다가 입을 통해 나와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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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등지고 |  2008-12-04 오후 1:03: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후지산 |  2008-12-04 오후 10:04: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청룡도의 연속이군요. 김옥균 기대합니다.  
내사랑숙이 |  2008-12-10 오후 4:28: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개화파에 대한 글이군요....흥미진진~~~  
달선공팔 |  2008-12-21 오후 6:18: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금 바로 대원군의 담 밖을 사는 한양의 서민들이 굶주림에 떨고 있지만, 그것은 담 밖의 사정일 뿐이었다.>

믕...  
AKARI |  2008-12-23 오전 6:21: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역사는 되풀이 되며 반복이 되고...
어느 시대나 민초들은 고달픈 운명입니다.  
당근돼지 |  2008-12-30 오후 3:18: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늦게나마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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