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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탁(假託)하는 마음에서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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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다. 자신을 자랑하려고 글을 알리려는 문화가 있고, 자신의 글을 다른 권위 있는 책에 살짝 끼워 넣는, 가탁(假託)하는 문화가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가탁은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닌 듯하다. 무책임한 듯도 하고.
ꡔ장자(庄子)ꡕ를 보면, 앞쪽의 글은 뜻이 무량하며 비유도 호쾌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글의 힘이 딸리고, 내용도 중언부언. 비유의 크기도 좁아지기에 당연히 따분하다. 핑계 같지만, 그래서 나는 읽다가 말았다.
바둑에도 그런 것이 있다. 12세기 초에 발간된 ꡔ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ꡕ을 보면, 남겨진 기보 21개 중에서 적어도 5개 정도가 그런 가탁의 혐의가 짙다. 예를 들면 손책과 여범이 남겼다는 기보, 그리고 당나라 현종이 국수 정관음과 두었다는 기보, 유중보와 왕각의 바둑 등이 그것이다.
기보를 보자. 현종이 두었다는 것인데 흑백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좌하귀도 우상귀도 교묘하다. 흑은 고분고분 백의 의도를 따른다. 알파벳을 따라가 보면 흑이 잡힌 것을 알겠다. 좌하귀와 우상귀가 같은 맥을 사용했음도 알겠다. 그러나 흑백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
굳이 현종이 국사(國事)에 바빠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추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인을 넘는 재주가 있다면 둘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범적인 수순이라는 것.
너와 내가 승부를 겨루는 바둑에서, 모범적인 포석과 맥 등은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이 바둑과 같이 국수급의 실력에서는 일방적인 흐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서로가 상대를 이기려는 지적(知的) 갈등에 평범은 어렵다.
자, 이제 초점을 좁히자. 현종의 이름을 빌려서, 손책의 이름을 빌려서 기보를 가탁했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 12세기 당시 포석의 수준과 맥점의 수준을. 다시 말해서 가탁이 당시의 수준과 문화를 충분히 알게 해준다. 한 때 나는 저 기보를 위작(僞作)이라고 불렀지만, 그렇게 부를 게 아니겠다. 책을 편집한 사람이 당시의 바둑 문화와 ‘바둑이란 이런 것이다’를 성실히 보여준 가탁의 형식을 밟았다고 본다. 가탁의 문화, 그것도 괜찮은 것이라 하겠다. 가탁, 그것은 의도된 거짓과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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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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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ronto4 |
｜ 2005-05-05 오전 8:15: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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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그렇군요. 손책과 여범의 바둑이 위작인지 아닌지에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문용직 사범님의 의견을 듣고 잘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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