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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의 흑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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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만에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떠난 길. 홀로 누워 지내는 밤. 급성 편도선염이라던가.
병상에서는 갖은 호사를 다 누려야한다고 나는 믿는다. 아플 때 돈 쓰지 않고 언제 쓸 것인가. 아플 때 홀로 지내지 않고 언제 홀로 지내 볼 것인가. 아플 때 떠나지 않고 언제 떠나 볼 것인가. 그래, 삼성병원 1인실에서 휴식을 푹 취했다. 부자에겐 여행, 빈자(貧者)에겐 병상.
그래도 바둑꾼이라서 그런지 바둑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사실 심심하기도 하고. 창을 때리는 여름 장마비가 눈을 밝히는 것도 한 몫을 했다. 응수타진의 고전적인 형태는 대략 몇 개가 될까. 50개 정도 그려졌다. 후절수란 이름은 마음에 아니 드니 다른 무엇으로 바꿀까. 개울치고 가재잡기? 너무 드러나는 흠이 있다. 개울에서 달 건지기? 여운은 남는데 우물에서 달 건지기는 어떨까? 지금껏 우물에서 달을 길어 올린 적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떨까.
나 혼자 바둑을 두어 볼까. 두어 보았다. 여섯 수 정도 나가니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수가 그 밖에 아니 되나. 설마 하니 그럴 리가. 가만 가만 되짚어본다. 무언가 답답하다. 내 마음이 둘로 나누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때 내면에서 바둑 한 판 두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나. 바둑은 본래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내는 것. 바둑 한 판에 무슨 무게까지 필요할까.
찾았다. 왜 내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검은 돌의 색상이 무거워서 가슴에 뭔가 드리워지고 얹힌다. 그래 흑백을 바꾸어 보자. 백으로 먼저 두어보자. 그래. 그리하니 과연 돌이 가볍게 반상에 놓여진다. 그래서 둔 것이 다음 기보. 편하다. 마음이 편하니 더 이상 진행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이것으로 병상일기는 끝을 냈다.
왜 나는 백이 먼저 두었을 때 마음이 편했을까. 고대 중국의 책을 보면 백이 먼저 둔 바둑이 더욱 많았다. 시대에 따라 달랐던 흔적도 있다. 문화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으리. 환한 달빛 아래서도 흑색은 흐릿하여 돌의 흔적이 불분명하다. 그래. 그래서 백을 펼쳤을 때 달빛이 내려앉듯이 내 맘도 편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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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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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범께서 아프셨다니요? 요즘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흑백이란 선착의 고정관념이 아닌 어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에 공감하며, 바둑과 함께하는 호흡으로 병마를 이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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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