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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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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니,나에겐 언제나 어느 날이다. 대국 날이든 아니든 나에겐 언제나 어느 날로 시작된다. 꼬집자면 LG 기왕전 1차 예선이 있던 지난 3월 8일.
나는 승부의 세계를 떠난 사람. 바둑계에서 살지만 승부에서는 멀어진 사람이다. 나는 내가 두는 바둑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디에 관심을 두는가. 굳이 말하자면 그냥 세상 안팎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그날이었다. 3월 8일. 나는 바둑을 두다가 커피를 한 잔 가지러 갔다. 아무리 승부를 떠나도 대국은 긴장되는 것이라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사고의 긴장을 푸느라고 대국장 사이를 약간은 어설렁거리게 되고. 좋게 말하면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 중이니 눈에 띄는 게 있다. 오늘의 기보. 아니다. 바로 말하면 여기 보여드리는 기보가 거의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2월 7일과 23일 국수 도전 5번기에서 2번이나 나온 포석. 그런데 그 날엔 1차 예선 전체 54국 중 이 포석은 불과 6국뿐이었다.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물론 비슷한 착상이 들어간 것은― 그러니까 흑7의 중국식 포석의 착상을 말한다. 흑7은 백A의 걸침을 제한한다. 흑7 이후 백A는 흑7이 앞서 있기에 공격을 스스로 자초하니까 말이다 ― 대략 30국 정도로 상당한 비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6국 중에서도 백16 흑17은 단 2국. 흑17이 강력하기 때문인데 흑17이 오기 전에 백16을 A로 걸쳐서 변화를 구한 대국이 4국이었다.
중국식 포석을 활용한 30국의 분포(分布)도 흥미를 준다. 10대와 20대만 그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있었고 40대와 50대 기사들은 다른 포석으로 승부하고 있었다.
과연 프로의 세계라 하겠다. 유행도 따르지만 생존의 본능은 유행을 넘어서기를 요구한다. 나이가 들면 유행을 따르기도 힘에 벅차지만. 연구생 사범에 의하면 연구생들은 10국에 5국은 유행을 따른다 한다. 복사판이라는 말이다.
가만 있자. 그렇다면 프로의 세계가 동물과 식물의 세계와 다른가? 모르겠다. 아니,같다 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 인간 사회도 그러리라.
(2004-04-07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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