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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바둑의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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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성탄과 연말, 연초. 저마다 갈 길이 바쁘겠지만, 훈훈한 인정을 나누고 다시 되새기기에는 이보다 더한 때가 없다. 굳이 이 때여야 할 까닭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작은 인간이니까 맘이 괜스레 추워지고 따스함을 찾는다.
지난 달 바둑계에 작은 행사가 있었다. 자선단체인 플랜코리아와 바둑계가 손잡아 이룬 것인데, 조훈현과 이창호, 유창혁과 이세돌이 편을 이루어 한 수씩 번갈아 두는 페어바둑을 둔 것이다. 대국료를 기부금으로 하고.
조촐했지만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바둑은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기에 실수가 많은 게임. 그래서 지혜를 모으면 명국(名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4명의 다른 기풍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그래서 반상이 파도처럼 율동하는 명국에의 기대감.
아쉽게도 이상(理想)은 냉정하다. 페어바둑은 시간과 형식이 어떻게 주어지든 2명이 만드는 바둑보다 생동감 넘치는 내용을 담을 수가 없다.
페어바둑은 대국자가 서로를 배려해야 하기에 개인의 생동하는 내면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바둑은 서로간의 감성 교류를 요구한다. 느낌에서 오는 생각의 단초(端初)가 반상을 이끌어가야 생기가 돈다. 그 단초는 어디에서 오는가? 너와 나의 무의식적 교감에서 온다. 그러나 페어바둑은 동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부담은 착상을 건조하게 만들고.
그러면 상담해서 두면 어떨까? 1935년 오청원과 기타니 등 당대의 1인자들이 제한시간 16시간의 상담 바둑을 두었는데 역시 정채감(精彩感)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심한 마음은 살아있다. 기보에서 흑5 백6 교환이 찰나의 틈을 포착한 수. 흑A 이하 백F까지 만년패를 남겨두었다. 간과하여 백E를 젖힘 당한 후에는 늦다. 그 때 흑5를 두면 백A로 살기 때문이다.
사회도 그렇다. 너와 내가 모이면 자신을 맘껏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진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너를 통해 살아있고 너는 나 속에서 숨을 쉰다. 저 홀로 존재하는 사회와 개인은 없다. 주위를 돌보고 조금은 세심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2003-12-25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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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