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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겐스케의 허무한 승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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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기바둑에 대한 글을 하나 썼지만 사실 내기가 어찌 밝을 수 있으랴. 가까운 친구와도 5만원,10만원 넘어가면 표정이 변하게 되는 것을….
하지만 아쉽게도 바둑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게 내기바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끊임없이 나오는 게 바둑의 폐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기사로서 난처하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바둑이 아니라 인간의 성품과 사회에 원인이 있는 것.
오늘 하나만 더 하자. 얼마 전 다카가와 9단의 ‘나의 혼인보전 분석’을 읽다가 어떤 장면을 보고 문득 떠올렸던 30년 전 얘기다. 비록 그 세계에 몸담지 않았더라도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내기바둑의 세계.
1974년 월간 ‘바둑’은 ‘방랑기객(放浪棋客)’이란 소설을 연재했다. 당시로는 드문 바둑 소설이고 또 바둑계의 이면(裏面)인 내기의 세계를 다룬 것이어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40대의 애기가는 향수마저도 가지고 있으리라.
프로 지망생이었던 하다 겐스케가 뜻밖의 내기바둑에 상처를 입어 파문당한 창백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그 소설은 그의 여린 인간성에 이런저런 요소를 가미해 그럭저럭 스토리를 꾸려갔는데 가끔 묘한 기보를 실어 현실감을 더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를 꿈꾸던 필자에게도 어려운 수준의 속임수 등을.
소설의 끝에 겐스케가 자신을 내기의 나락으로 빠뜨렸던 내기꾼과 다시 한번 대국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천하의 누구라도 4점이면 이긴다는 그를 겐스케가 3점 접던가? 그런데 문제는 겐스케가 불리했다는 것. 3집 정도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악당이 이긴다? 그건 곤란하다. 그래 반전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기보가 그 역전의 장면으로 다카가와 9단의 대국을 약간 변형했다. 우변이 문제이고 좌변이 답이다(흑6→백3). 백11 이후 a와 b를 맞봐 수가 났다. 흑2를 5에 두면 백7 흑8 백10 흑9 백A 흑7 백B까지 패가 된다.
겐스케는 허무했다. 어긋난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었으며,음울한 내기의 세계 속에서 그는 이미 한겨울을 겨우 살아남은 흙담처럼 풀썩 무너져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복수가 어찌 해결책이랴. 그렇다. 실로 내기의 세계는 어두울 뿐이다. 기객(棋客)에게도 방랑이란 그럴 듯한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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