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승부는 그런 거다 !!
|
|
|
|
|
왕리청이 옆을 스쳐갔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눈길이 마주칠까 애써 피하고 있었다.
바둑이란 묘한 것이-아니 승부는 본래 상대적이라 그렇겠지만-자신보다 2점 정도 약한 상대를 시합에서 만나면 거북하다. 차라리 2점을 접고 두면 편한데 호선으로 두면 뭔가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지난 75년 입단대회 예선전. 필자는 후배를 만났다. 3점 아래의 실력. 그러나 국면은 쉽게 풀리지 않고 승부는 오리무중이었다. 어찌 그리 잘 두는지! 아니,내가 왜 그리 못 두는지!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어둠처럼 차 올랐다. 내가 프로 지망생이 맞는가 하고.
74년에 처음 서울로 올라와서 입단대회에 나갔다. 프로에게 2점 하수인 내가 3차 예선까지 올랐다. 첫 판을 지금의 L 7단과 두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유리했다. 계속되는 공격과 공격. 상대는 수순에 갈피를 못잡았다. 물론 결국은 내가 돌을 거두었지만. 그 날 오후 두 번째 대국에선 K 9단인 그 해의 입단자와 두었다. 그런데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그러나 나는 그 후 입단 실력을 갖추기까지 2년 반이 걸렸다.
그 입단자는 왜 나에게 졌을까. 나는 왜 후배에게 힘들었을까.
최근 LG기왕전 세계대회에서 왕리청 9단이 유럽 대표 알렉산드르 디너슈타인(샤샤) 초단에게 졌다 해서 화제가 되었다. 실력의 차이는 2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적필패(輕敵必敗)? 아니다. 왕리청 같은 프로가 성실히 두지 않았을 리 없다. 충분한 시간 소비도 그의 성실성을 말해준다. 그런데 흑1과 흑5가 이해할 수 없는 수. 왜 흑은 A를 두지 않았을까? 감각적으로 두고 싶은 두터운 꼬부림인데…. 백10이 맥점으로 반상이 흔들렸다.
심적 부담으로 무너졌는가. 모르겠다. 아니다. 질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 프로의 정상이라고 해서 완벽하란 법은 없다. 승부란 그런 거다.
아,샤샤 초단은 그 다음 대국에서 훨씬 좋은 내용을 선보였다. 감각이 밝아졌고 시야도 넓어졌다. 불과 하루만에.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상대에 대한 의식 여부가 승부의 바탕을 이루는가 보다.
(2003-06-26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
|
|
|
|
|
|
|
|
|
|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