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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도 흥겨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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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9일 오후2시 인사동 낭인기원에 들렀다. 문을 연지 한 달만에 바둑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한지(韓紙)로 벽을 도배한 작지만 밝은 방 하나. 바둑판이 8조 놓여 있으니 대여섯 평이나 될까. 왼쪽 벽에는 그 날의 대회 참가자 이름을 써 붙인 한지 한 쪽. 7명의 참가자.
먼저 원장과 수인사 나누고 고객 한 분과 한 판 둔다. 잠시 후 다른 분과 또 한 판…. 시간은 가는데 대회는 열리는지 마는지 모르지만 알 바도 아니다. 오후 3시30분쯤 되었을까. 어떤 분은 떠나가는데 언젠가 인사드린 시인이 들어서기에 고개를 숙였다. 원장이 반갑게도 대국을 주선하지만 그 분은 친구와 두겠다고 미소로 손을 저어 원장을 말렸다.
필자도 할 수 있나. 필자와 약속한 분은 4시에 온다 했으니 잠시 옆에서 관전으로 시간을 때운다. 가만 보니 대회는 뒷전이다. 시합을 겸하여 담뱃값 걸고 한 판. 빠르기도 하다. 연세가 고희에 가까운 두 분인데도 한 판에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수 바둑이라 심심한 게 사실인데 눈 크게 뜰 장면이 하나 등장했다. 기보를 보자. 백1이 묘수. 다음 흑A는 백F까지 살아간다. 멋진 수다. 백1을 D에 먼저 두면 흑a로 백 6점이 떨어진다. 4급의 실력으로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연조(年條)가 쌓였기 때문일까. 수십년간 4급 두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렇다. 세월이 절로 쌓여 손에 익고 익는 그 무엇이 바둑엔 있다. 기원도 마찬가지. 개업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으니 담배 연기와 커피 향에 절어있지는 않지만,그렇다고 흥겨운 공간이 어디 갈까.
인터넷에 밀려 기원은 이제 손꼽을 정도로 그 수가 줄고 있다. 필자도 1년에 한 번 정도나 들릴까. 한국기원 공식 대국 외에는 둘 일이 거의 없으며,두고 싶을 때는 인터넷으로 즐기는 정도니 말이다.
저녁이 내리면서 70년대 기원의 낯익음에 젖어가는 필자와 손님, 원장이 저멀리 바라보인다. 기원은 어느덧 파장(罷場)이다. 기보에서 흑을 잡은 시인의 싯구가 떠오른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20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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