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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속에 숨겨진 섬세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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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꽃은 사활(死活). 꽃을 감상하듯 우리는 사활묘수풀이를 즐기고 익힌다. 그러면 사활묘수풀이의 꽃은 무엇일까? 섬세한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사활문제를 만드는 창안자의 세심한 배려.
얼마 전 권오민 3단과 인터뷰를 하였다. ‘주제가 있는 만남’으로 글 하나 쓰려고 만난 것이다. 주제는 사활묘수풀이의 산책이었다. 어떻게 만드느냐,왜 만드느냐,어떤 사활이 아름다운가,사활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등 다소 따분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건 따뜻한 마음.
권오민은 섬세한 감성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사활문제는 간결하고 작품성도 뛰어나야하지만 그 못지 않게 푸는 자의 사유의 맹점을 개발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이야기하였다.
기보를 그리면서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자. 먼저 우상귀와 좌상귀의 모양. 돌 하나의 위치(●와 ▲)만 빼고는 두 문제 똑 같다. 첫 수는 좌하귀 흑1. 그러나 흑3이 틀려서 백은 살아간다. 우하귀가 정답이다. 흑9 다음 백a,흑7(이 수로 먼저 b로 따내면 백 따냄(△),흑7,백b까지 살아간다),백5,흑b,백 따냄(△) 흑 단수(◎)까지 패가 된다.
여기서 우하귀의 뭉쳐진 흑 돌을 보자. 뭉툭하게 뭉친 형상이라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모양은 심미안을 거스른다. 좌하귀 흑1은 상상도 하기 싫다. 맹점이 된다.
그러나 좌상귀의 모양이라면 흑1을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 형태가 빈삼각이 아니기 때문. 따라서 흑1은 우리의 추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다. 권3단이 문제를 만들 때 좌상귀보다 우상귀의 모양을 선택한 까닭은.
돌의 모양에 익숙해야 하지만 또 그 격식을 벗어날 필요도 있기에 우리는 사고가 자유로울수록 좋다. 그러려면 상식의 틀을 깨야 하고 사상과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권3단은 우리를 절벽까지 몰아간다. 그 앞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몫이지만 권3단은 조심스레 배려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활이라 그저 수(手)만 보여주면 될 것 같은데,그는 인식에 미치는 외부의 영향도 잊지 않는다.
물상(物象)은 마음의 현시, 인식은 세계의 내면화. 바둑에도 어김이 없구나.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200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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