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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한 편의 포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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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는 지난 시절의 잡지가 추억처럼 꽂혀 있어 가끔 손길이 머물곤 한다. 몇일 전 먼지를 털고 손에 잡은 잡지에서 우연히 눈이 닿은 곳은 ‘오청원의 포석 구상’. 아, 이 글! 1960년대엔 ‘기계(棋界)’라는 잡지에서 1970년대엔 ‘바둑’에서 만나던 그 유명한 포석 강좌.
오청원 선생의 포석강좌는 그의 신포석 발견 못지 않게 유명하다. 간결하고도 정확한 형세판단,비범한 착상,미련을 남기지 않는 결단력.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위대한 강의에 모순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는 백의 포석과 흑의 포석으로 나누어져 있다. 백의 포석은 백이 둘 만한 포석이고,흑의 포석은 흑에게 유망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레 의문이 나온다. 흑에게 좋은 포석과 백에게 좋은 포석이 따로 있다면, 모순(矛盾)의 고사(故事) 그대로 흑과 백 모두에게 유리한 바둑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흑백의 실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백의 포석으로,다른 어떤 것은 흑의 포석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답을 찾는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그 강의는 빼어난 착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둔다. 서로가 악수도 없이 잘 두어 왔더라도 어느 순간 안목이 트인 수를 두면 곧 유리한 포석이 된다. 그렇다. 선생은 우리에게 다양한 착상의 지평을 열라고 한다. 발빠른 포석의 전형,사석작전의 성공 예,돌의 방향을 잘 잡은 구상…. 그런 것을 보여주면서 그 순간의 그 착상을 붙잡으라 한다.
기보를 보자. 흑1,3이 백의 진출을 한 걸음 지체시키고 돌의 방향을 제대로 이끈 적절한 호흡. 이로써 흑이 좋다. 흑3 이후 백A는 흑a로 받아 넉넉하다. 흑1이 아니라 A의 공격이 보통 착상이지만 백B,흑C,백D까지 흑 진영으로 백을 끌어들여 오히려 손해가 된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흑1,3이 좋다면 그 이전에 백의 착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비범한 착상과 경쾌한 감각을 즐기고 마음에 담아 두라는 철학인지? 오늘의 태양 아래선 어제의 미련일랑 걷어내라는 그런 지혜인지? 그래서인지 다른 포석강좌와는 달리 선생의 강좌에 잠기면 시(詩) 한 편에 마음이 맑아지는 그런 경지를 느낀다. 누구라도 선생의 강의를 정갈한 마음으로 들어볼 일이다.
(문용직 프로4단 200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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