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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야할 긴터널 뒤에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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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무섭다. 말 빚을 갚느라고 오전 5시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참 드문 일이다. 새벽에 깨어난다는 자체가. 오전 8시30분부터 두 시간의 정치학 강의. 무슨 책 읽지? 요즘 너희들이 읽는 소설이나 시를 소개해줄래? ‘논어’가 재미있었다고? 음,대학생이 그 책에 즐거움을 느끼는 건 드문 일인데? 그러면 나도 하나 주어야지. 나중에 시간되면 이 책 읽어볼래?
돌아오는 길엔 전철 안에서 선잠을 잤다. 그러면서 마음은 뭔가를 품고 있다. 오늘 뭔가가 있던데…. 맞아. 이창호와 안조영의 명인전 3국이 있지. 안조영이 이창호에게 당한 10연패(連敗)의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깊고도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 인터넷을 열고 66수까지 진행된 수순을 얼른 훔친다. 음,이렇게 진행되었나? 점심 휴식은 오후 2시까지니까 여유가 있군. 손 씻고 식사 먼저 해야겠군. 오후 2시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어려운 진행이 펼쳐진다. 곧 오후3시. 피곤해 잠에 다시 떨어진다. 눈을 뜨니 오후 4시15분. 아,그동안 겨우 10수 나아갔군. 다시 30분이 지나가는데 단지 3수만 나아간다.
상념이 휘돈다. 어떤 심정으로 안조영은 자리에 앉아 있을까…. 아니,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반상 앞에서 견딜 수 있을까. 일본 최고의 타이틀은 본인방전. 그 본인방을 9연패(連覇)한 다까가와는 우승할 때마다 오청원에게 3번기를 지도받곤 하였다. 첫 결과는 11연패(連敗).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리곤 7연승(連勝). 길 없는 길은 없는 법인가. 단지 길 찾기 전 어둡고도 긴 터널이 있을 뿐인가. 안조영도 그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도 그 터널은 존재하는가.
초반 안조영(백)의 백4,6은 두점머리를 자청하는 나쁜 행마. 그러나 누가 하랴, 그 수의 평가를. 기다려야만 되는 안조영의 하루. 지켜보고만 싶은 그의 자세. 분석하고 싶지 않은 바둑. 밤열차처럼 지나가는 수순,수순들.
안조영의 하루가 간다. 그의 어두웠던 터널에 빛이 보인다. 감동은 전염되는가. 필자의 하루가 긴 터널로 새삼 각인된다. 덧붙일 게 무어 있으랴.
(문용직 프로4단 2002-10-01)
●... 관련기보는 제33기 SK엔크린배 명인전 도전3국, 도전자인 안조영 7단이 반집을 이긴 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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