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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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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강박으로 다가오고 인심(人心)은 순간순간 흔들린다.
지난 2월 21일에 있었던 일본의 제26기 기성전(棋聖戰) 도전 5국의 결과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이미 많은 애기가들이 알고 있을 그 사실을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보를 보자.흑1(293수) 이하 흑7까지 된 장면에서 왕리청 9단이 “(●을) 따내도 됩니까?”고 입회인 이시다 9단에게 물었다.그 순간 류시훈 7단은 “내가 흑1의 시점에서 바둑이 끝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항의하였고,왕9단은 “나는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이시다 9단은 당황해 기성전 규정을 살피고 비디오 녹화 테이프를 판독한 후 “흑1 시점에서 바둑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판정하였다.이에 왕9단은 백8로 흑 여섯점을 따내고 바둑은 끝났다.흑의 불계패.이 해프닝만 아니었으면 흑이 3집 반 이겼을 바둑을.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피부로 접하는 여론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하나는 류7단의 경솔함을 탓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고,다른 하나는 왕9단이 “따내도 됩니까”라고 입회인에게 질문한 것을 보면 그도 대국이 끝났다는 것을 이미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그러니까 기성 보유자에 걸맞지 않는 치졸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솔직히 말해 애매하다.프로세계의 그 치열한 승부 여건 하에서 승부에 흔들리는 인심(人心)을 어느 정도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를 좁혀보자.이런 문제가 양심에 의존하여 해결될 수 있을까.큰 승부,그 절체절명의 긴박감에 접해보지 않은 필자 같은 보통 프로가 흔들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나라는 공배까지 다 메우는 것을,즉 공배가 다 메워져 서로가 착수 기권을 하는 순간을 종국(終局)으로 규정하고 있다.흔들리는 인간 심성의 한 부분을 미리 헤아린 예절인 듯해 다소 위안이 된다.그리고 바둑의 세계를 예(藝)로 보았던 다수의 아마추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라고 염려한 어느 관전필자의 글도 있으니 그 또한 위안이 된다.
(문용직 프로4단 20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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