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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Time)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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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일본 최고(最古)의 전통을 자랑하는 본인방(本因坊)전의 도전기 제1국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제46대 본인방이 조선진 9단이라 서울에서 개최한 것이다．
마침 점심 약속이 그 부근에서 있어 식사를 마치고 롯데호텔 37층 대국실 옆 3700호실을 찾았다．이때가 오후 3시 경．아니나 다를까,각자 8시간이 주어진 이틀거리 바둑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진행은 더디기 그지 없었다．겨우 24수가 진행되었을 뿐이었다.폐쇄회로 TV에는 바둑판이 비스듬하게 비춰지고 있었는데,밝은 비자(榧子)판이 깊은 잠에 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더딘 진행에 지친 필자．“어휴,답답해．이젠 정말 저렇게 느리게 두는 것은 보는 것도 힘들다”고 참을성 없이 투덜거리자 옆자리의 김인 국수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우리나라에 이틀거리 대국은 없다．가장 긴 것이 5시간의 제한시간．최근의 국제 시합에서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의 하나도 이에 있다．국제시합은 하루만에 끝나는 것이 관례．짧은 시간에 익숙한 나라가 좀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그 만큼 시간의 값어치는 감소되어,시간을 열심히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사실 8시간 바둑이나 3시간 바둑이나 1시간의 속기 바둑이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오히려 돌의 생명력은 그 박진감으로 인하여 속기에서 더욱 빛날 때가 많다． 잠시 기보를 보자．조선진 9단에 대하여 왕밍완(王銘琓) 9단의 백이다．이 바둑은 백의 착각으로 59수의 단명국(短命局)이 되었는데,흑7(59수)에 대하여 백이 A로 나가더라도 흑R까지 회돌이 축에 걸린다．어찌 이런 실수를! 백2는 7에 받아두어야 했다．제한 시간을 충분히 주자는 것은 이런 아쉬움을 가급적 줄이고자 한 배려이건만．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프로의 일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실수．진부한 진실이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하여 충분히 고뇌하여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문용직(프로 4단) 2000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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