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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큰형 친구가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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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3일) - 나의 아마 시절 - 큰형 친구가 선생
새벽 4시 32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리도 일찍 깬다.
잠이 부족하다. 물론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창에 내 명암 비치는 거 보니, 세상은 아직도 고운 밤이다.
1968년 큰형과 함께 대학에 들어간 형 친구가 있었다.
김종태 형님.
대학에 들어가서 바둑을 배웠는데 - 고등학교 때에도 두었다 - 매우 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3점 접기는 힘들다. 2점은 내가 이길 것이다. 이 분이 또한 장고파였는데 덕택에 나도 장고할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장고파였다. 국민학교 때도 그랬다. 속기로 두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 분이 말씀했다. 좀, 생각 좀 하고 두도록 해라. 그 후 나는 장고파로 변했다. 아마도 대국 상대가 그리 많지 않기에 장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분이 방학 때면 김천에 내려와 집에 놀러오곤 하셨다. 당연히 바둑을 배웠는데, 내가 장고를 해도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하수가 장고하면 상수는 짜증나기 마련 아닌가. 한 수 놓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한다 하셨다. 성품도 그러하셨다. 곱고 차분한 성격.
기본 사활
처음에 몇 점을 놓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 분도 대학 시절 내내 바둑 실력이 늘었으리.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나도 실력이 약해서 다음과 같은 기본 사활에 생각을 해야만 했다. 백1 패감에 나는 망설였다. 왜 백1인가. 흑2를 두지 않으면 백이 그 자리에 두어서 잡힌다는 것을 5분은 생각해서야 발견했던 듯싶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말에는 내가 실력이 앞섰다. 세 판을 연달아 이기면 치수를 바꾸는 고전적인 치수변경제를 채용했는데, 내가 先으로 세 판을 이겼던 것이다.
하하.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날.
돌을 쥐어 내가 백을 잡게 되었었다.
그러자 형님 말씀.
야, 용직아. 내가 백을 잡고 먼저 두면 안 되겠냐?
하하. 이 분은 요즘도 우리 큰 형님과는 자주 만나 두신다. 그 하신 말씀 기억하실까? 하하.
그 분을 통해서 나는 바둑계에 대해 약간이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이상이었다. 그 분은 나보다 앞서 있기에 방학 때가 되면 나는 실로 내 실력 양성에 크게 도움을 받았었다. 김천에는 그리 잘 두는 분이 많지 않았고 또 기원에는 자주 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큰 형이 나에게 책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오청원 책을 방학 때 사 오겠노라 했는데, 오천원 짜리 책을 사다주겠다고 나 홀로 알아 듣기도 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오천원은 거금 아닌가. 잔뜩 기대했었다.
큰 형이 나에게 사다 준 책은 세권이었다.
오청원의 포석
사까다의 귀수묘수
임해봉의 바둑의 전술
한 帙로 묶여진 문고본 크기였는데 세 권 모두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보았었다.
포석은 기억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지만, 바둑의 전술은 기억에 제법 남고, 귀수묘수에 나온 형태는 설명까지 기억되는 것이 매우 많다. 그 정도로 열심히 보았다.
즐거운 얘기 하나 할까.
지금은 작고하신 靑冥 任昌淳 선생은 芝谷書堂을 열어 후학을 많이 배출하신, 실로 쉽지 않은 일을 하신 분이다. 몇 년 전 이 분이 속초의 콘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실 때, 나는 하영휘 선생과 함께 찾아뵌 적이 있다.
바둑을 좋아하셔서 대국도 몇 번 했는데, 9점으로, 10분이면 한 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의 권유에 의해 마지 못해 나와 한 판 둘 뿐 더 이상은 두지 않으셨다.
그래, 속초에서는 대국 대신에 명국을 하나 해설해 드렸다. 귀수묘수에 나온 사까다와 후지사와의 명국 하나. 물론 중학교 때의 기억을 살린 것이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둘러앉은 모두가 유쾌해 하기에 내킨 김에 하나 더 재밌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그 며칠 전 두었던 내 바둑을 놓아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돌을 잡았다. 아, 그런데 이런! 며칠 전의 바둑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그러자 그 분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카랑카랑한 목소리.
나이가 들면 똑똑한 사람도 기억력이 희미해지는 법이야.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런데 말이다. 참, 나도 아둔하게, 그 말씀을 칭찬으로 알아들었으니!
선생은 천재로 이름난 분.
누구나 잘나고 싶어 한다. 나는 부족하니 더욱 그러고 싶다. 솔직히 그러하다.
사까다의 귀수묘수는 실로 대단한 충격을 나에게 주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거야 사소한 것. 읽고 읽으면 왜 아니 되겠는가.
중학교 때 나의 바둑 스승은 바로 앞서의 그 세 권의 책.
김종태 형님.
그리고 다른 한 분이 계셨다.
내가 김천에서는 그래도 잘 둔다고 폼을 잡아가기 시작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한 분은 나의 폼을 좀 제대로 잡아주셨다.
지금은 마산에 계신 전병윤 님이 바로 그 분이다.
새벽 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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