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6일. “끝났어 끝났어, 바둑은 끝났어. 심했어.” 복도에서 몇 번이나 자조를 내뱉던 다께미야가 대국실로 들어와 백1에 붙인 것이 오후 4시 3분. 조치훈은 겨우 4분으로 흑2에 젖혔다. 백3은 4시 8분. 그러자 조치훈의 탄식과 고뇌가 시작되었다. “이런 바보! 무슨 수를 두었느냐.”

그렇다. 다른 수가 없다. 흑4를 a나 b 어디에 두어도 백에게 4 단수를 당해 나쁘다. 흑2는 애초에 b에 두어야 했고 그것으로 우세를 견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흑4 이후엔 백c 흑a 백d가 되었고, 상변 백은 잡았지만, 중앙 빵따냄을 주어 흑이 불리한 국면이 되었다.

일본 제9기 기성전 관전기의 일부인데, 과연 이시다의 말대로 조치훈은 자신을 책망하는데 3시간의 거의 모든 시간을 썼을 것이다. 조치훈 개인의 특별한 태도일까. 그럴 것이다. 모든 기사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다. 내가 본 많은 도전기가 그러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기사들은 그런 아픔을 되도록 빨리 삭인다. 그렇게 오래 끌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수로 얻은 자책은 대국이 끝나도 두고두고 남는다.

얼마 전 1시간 준속기 예선전을 입회한 적 있었다. 약 3시간 동안 대국실에서 이 바둑 저 바둑 관전했는데, 내 바둑 두지 않고 있었으니 주변 환경이 그렇게 소란스러울 수가 없었다. 건물 뒤 유치원 원생들의 병아리 노랫소리, 채소 파는 봉고의 확성기 소리, 후두둑 소낙빗소리, 심지어 대국장의 초침 소리, 돌 소리 …. 그러나 대국자는 모두들 귀가 닫힌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자책과 한숨, 그 내면의 소리에도.    

새삼 돌아본다. 그 얼마나 바둑이란 것이, 그 얼마나 바둑이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