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쉽다. 반상에 널리 쓰이는 패턴을 찾아내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바둑은 어렵다. 아니, 공부는 어렵다. 반상의 패턴을 몸에 익숙하게 갖출 때까지 노력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이기기는 힘들다. 반상의 상식적 패턴에 생각이 묶인다면. 아니, 이기기는 쉽다. 반상의 보편적 패턴을 넘어서는 패턴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서로가 다른 이해인가. 서로가 모순적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보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지난 5월 2일 한국바둑리그 대국인데 백이 안조영 9단이고 흑은 최철한 9단이다. 실전에서 저 흑1이 막 두어졌을 때, 안조영의 손길이 돌을 하나 집었다. 돌 소리도 정정(丁丁)하게 백2를 반상에 가볍게 두드렸다. 순간! 반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 국면을 바라보던 관전자의 내면에서 일순 승부도 사라졌다. 내면을 눌렀던 그 존재의 무게가 사라진 것이다.

검토실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는데, 저 백2는 승착일 뿐만 아니라, 쉽게 찾을 수 없는 감각이요 급소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착상은 백2를 A에 둔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 호구자리 B의 급소가 남는다. 지금 백 석점(△)은 백에게는 가벼운 돌. 그러나 흑에게는 부담되는 돌. 백과 흑의 입장은 다르기에, 국면의 기울기 또한 서로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실로 저 백2는 쉽지 않은 안목이었다. 우리 의식 속에 바둑에 관한 패턴이 있다면, 그 패턴은, 비록 프로라고 할지라도 백2가 아니라 A가 보통이다. 검토실에 모였던 신예기사들이 백2를 보고 감탄한 것이 그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바둑은 상대가 있는 것. 그러나 상대가 있다고 해서, 서로 간에 경쟁이 있다고 해서, 상대와 다른 생각을 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조건에 묶여 있기에 비슷한 착상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상대를 이겨내기 위해서 상대보다 넘치는 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만 말이다.

나는 백2를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의식의 패턴은 어떤 길을 따라 걷고 있는가. 당연하면서도 당연치 않은 길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