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피스 차림의 소녀는 열일곱 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게 보였다. 마치 모델처럼 큰 키에 몸매는 볼륨이 있었다. 더군다나 붉은색 원피스가 볼륨 있는 소녀의 몸매를 더욱 자극적으로 드러냈다.

“여긴 웬일이야?”

“산책해요.”

“산책?”

내 말에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한번 한 말을 두번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러고 보니 여긴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다.

“사건현장을 살펴보고 있었어.”

“무슨 사건이어요.”

소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나이 어린 소녀에게 살인사건이란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어.”

“사람이 죽었어요.”

“응. 살인사건.”

살인사건이라는 말에도 소녀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나무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무에 두었던 소녀의 시선이 다시 나한테 꽂혔다. 잠시 그 특유의 무표정한 눈길로 빤히 바라보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만나고 싶었어요.”

“나를?”

“아파트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왜? 할 얘기라도 있어?”

“우리 집에 와요.”

밑도 끝도 없는 소녀의 말에 기가 찬다. 도대체 이 여자애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혹시 돌은 거 아냐?

“10일 저녁 9시까지 오세요.”

전입가경이다. 이젠 숫제 명령이다. 버럭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빤히 바라보는 소녀의 까만 눈을 보면 버럭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들어간다.

“너 이름이 뭐랬지. 유...”

“유리애여요.”

“그래. 유리애.”

나는 잠깐 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우린 말이지. 아파트 공원에서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눈 사이에 불과해. 집에 초대할 그런 사이가 아니라구. 집에 초대한다는 건 굉장히 가까운 사이만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우린 가까운 사이여요. 그래서 축하를 받고 싶어요.”

“무슨 축하?”

“내 생일 축하요. 10일날 내 생일이어요. 열여덟 번째 생일. 이제 성인이 되어요. 그래서 축하받고 싶어요.”

“그래. 그래. 축하해줄게. 하지만 진짜 축하는 아빠나 엄마한테 받아. 언니나 오빠도 좋구. 난 너희 집에까지 가서 축하해줄 그런 사람이 아냐.”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언니도 동생도 없어요.”

소녀의 말에 뜨끔해진다.

“부모님 안계셔?”

소녀는 내 질문에 대답 없이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럼 지금 누구랑 사는 거야?”

“혼자 살아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혼자 산다고?”

“혼자 살아요.”

이제 열일곱 살뿐이 안된 어린 여자애가 부모형제도 없이 혼자 산다. 학교 때문에 떨어져 산다면 이해가 되지만 이 여자애는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소녀가 애틋해 보였다.

“며칠이라고?”

“10일 9시여요.”

“아파트 동호수가 뭐야.”

“105동 1304호여요.”

“우리아파트 건너편이구나. 알았어. 갈게.”

“10일 저녁 9시여요.”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인사도 없이 가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애다. 이제 며칠 후면 성인이 되니 애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상복 살해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내가 어디선가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봤지.

호철은 다시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상복은 중국에서 농수산물을 수입하는 업자였다. 수입한 농수산물을 쪼개지 않고 통째로 도매업자에게 넘긴다. 물론 전주(錢主)는 따로 있다. 농수산물을 수입하는 대가로 전주와 도매업자한테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오상복의 생업이다.

오상복은 신용이 좋았다. 그래서 전주와 도매업자들이 줄을 섰다. 덕분에 벌이는 꽤 괜찮았다. 평균 한달에 한 건 정도. 한 건에 전주와 도매업자한테 챙기는 수수료가 천만원 정도였다. 꽤 좋은 수입이지만 중국을 왔다갔다 하는 경비도 만만치 않고 씀씀이가 헤픈 오상복은 썩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집 한칸에 먹고사는 걱정을 안하는 정도였다.

성격이 좋은 오상복은 대인관계에서도 그리 모나지가 않아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없었다. 돈관계도 깨끗했다. 채권도 채무도 없었다. 돈에 의한 원한도 아니다. 주변에 정을 통하는 여자도 없었다. 살인사건의 삼대요소인 여자, 돈, 대인관계 모두 오상복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만약 면식범이 아닌 사이코패스 같은 범인에게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직계가족범행. 오상복의 가족은 마흔 살의 부인과 열여섯 살의 딸이 있다. 여기서 또 벽에 부딪친다. 오상복의 부인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벙어리였다. 처음 오상복의 사망소식을 알리자 부인은 뜻 모를 소리를 내면서 부산스럽게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호철은 그런 부인의 모습을 보고 저으기 당황했었다. 주변사람들은 오상복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 사람 없지. 암. 없고말고. 나 같으면 저런 모자란 사람을 데리고 살지도 못할 거야. 그런데 상복이는 자기 마누라를 끔찍이 위했어. 행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면 마누라 먹인다면서 꼭 포장을 해가는 사람이야. 마누라가 정상이라도 그러기 힘들지.”

“어휴. 말도 마세요. 그 사장님이 우리 가게에서 사간 옷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거여요. 지나가다가도 예쁜 옷만 보면 자기 부인한테 어울릴 거라면서 무턱대고 사가는 분이라니까요. 부인한테 지극정성이었어요.”

“오상복이 그 사람 앞에서는 벙어리 벙자도 꺼내면 안돼. 아주 사단이 난다고. 거 생긴 건 우락부락 산적 같은 사람이 자기 마누라를 위한 속은 아주 깊은 사람이지.”

호철이 오상복 부인을 다시 찾은 건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서였다. 오상복의 집은 살해현장에서 3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빨간 대문이 인상적인 단독주택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이 지나서 빨간 철문이 삐그덕 열리더니 얼굴이 까무잡잡한 여자애가 얼굴을 삐죽 내민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오상복의 딸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여자애는 요즘 애들답지 않게 키가 작았다.

“학생 집에 있었구나. 아저씨 기억하지? 장례식장에서 봤잖아. 경찰아저씨.”

“안녕하세요.”

딸은 마지못해 인사하는 듯했다. 적의에 가득한 눈빛이다. 딱히 호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랬다. 원래 그런 건지 졸지에 아버지를 잃어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를 뵈러 왔는데 계셔?”

“왜요?”

딱딱한 말투다. 여전히 대문을 붙잡고 몸을 반만 내민 상태다. 호철을 절대 집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범인을 잡으려면 여러가지를 알아야 하거든.”

“아시잖아요. 엄마는 도움이 안된다는 거.”

“그렇긴 한데...참, 이름이 뭐랬지?”

“오자영.”

“그래. 자영이. 그러니까 자영이가 도와주면 되지 않겠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 주변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말이지. 자영이도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빨리 잡기를 바라겠지? 그래야 아버지도 편히 눈을 감으실 테고. 그러려면 자영이가 아저씨를 도와줘야해.”

딸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비로소 대문을 열었다.

“빨리 끝내셔야 해요.”

“그래. 걱정마.”

대문 안을 들어선 호철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당이 꽤 큰 주택이었다. 마당 한쪽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마당 가득 꽃향기를 채우고 있었다.

오상복 부인은 꽃밭 옆에 놓인 쇠로 만든 하얀색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호철을 보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불안감이 가득한 행동이다. 부인의 불안감을 딸이 진정시켰다.

“엄마. 걱정하지마. 경찰아저씨야.”

딸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는 부인이다. 그러나 불안감은 감출 수 없었다.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연신 두리번거리면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호철이 의자에 앉으며 죄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마음도 추스리지 못하셨을 텐데 이렇게 불쑥 찾아뵈서. 사실 이런 사건은 초동수사가 중요해서 항상 시간에 쫒기는 편입니다.”

“엄마는 그렇게 어려운 말 몰라요. 용건만 말씀하세요.”

“아...그래.”

딸의 다부진 말에 호철이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의례적인 질문입니다만 남편분께서 평소에 원한 살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 * % $ @ #”

호철의 질문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계인 같은 말을 하는 부인이다. 그것을 딸이 옆에서 통역하듯 말한다.

“없었대요.”

“그러니까...”

호철이 뭔가를 찾는 듯 수첩을 뒤적였다.

“오영복씨가 남편의 동생분이시죠.”

“네.”

엄마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딸이 대답한다.

“두 사람 8년전에 폭행사건으로 쌍방고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후로 작은아버지는 만난 적이 없어요.”

“물론 자영이는 그렇지만 아버지나 엄마가...”

“만난 적 없어요. 어디 사는지도 몰라요.”

딸의 대답은 단호했다. 사실 호철도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부인이나 딸이 호철에게 줄 수 있는 정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오상복에 대한 정보는 두 모녀(母女)보다 호철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호철이 알고 싶은 건 두 모녀였다. 호철은 모녀에게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처음 부인을 만난 건 오상복 사망소식을 전할 때였다. 호철이 오상복의 죽음을 말하기도 전에 부인은 극도로 불안감을 보였다.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은 졸지에 남편을 잃은 슬픔보다 찾아오는 문상객들을 만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것은 지적장애로 인한 감정 표현의 미숙이라기보다는 극심한 대인기피증처럼 보였다. 그리고 딸도 정상이 아니다.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멀리하고 적대감을 표시했다.

결정적인 건 오상복의 핸드폰 통화내역이다. 주변사람들이 증언했듯이 오상복은 부인에게 극진했다. 하지만 한달 동안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결과 부인에게 단 한번도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부인의 비정상적인 상태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음성통화보다 메신저가 더 발달한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문자로도 얼마든지 서로간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상복은 지난 한달 동안 부인과의 통화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아마 한달 그 이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한달간 딸 역시 단 한 건의 통화도 없었다. 뭔가 위장됐다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호철은 수사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은 딸이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나비 한마리가 여유롭게 팔랑이며 눈앞을 날아다녔다. 날아다니는 나비를 부인의 눈길이 좇았다. 부인의 눈길은 평화로워 보였다. 불안감도 없어졌다. 무더운 날씨에도 긴팔을 입고 있는 부인이다. 호철은 부인을 볼 때부터 그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나비 때문에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부인이 나비를 잡으려고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소매가 헐렁한 부인의 옷이 팔꿈치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팔뚝에 길게 뻗어있는 흉터가 보였다. 뭔가에 심하게 데인 흉터다.

“흉터가 꽤 크군요. 뭐에 데인 거죠?”

호철의 말에 움찔하는 부인이다. 나비가 부인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았다.

“그 팔에 흉터 말입니다.”

호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인은 자지러졌다. 흉터가 있는 팔을 다른 팔로 감추려는 듯이 잔뜩 감싸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며 목이 꺾이도록 도리질을 쳤다. 당황한 호철이 부인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부인.”

“그만둬요!”

호철의 말을 자른 건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는 딸의 외침이었다.

“돌아가세요!”

어쩔 줄 몰라하는 호철에게 딸이 다시 한번 소리친다.

“그만 가라구요!”

딸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코란도는 거의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이놈의 차는 아마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하긴 오래 타기도 했다. 아버지가 8년 타던 차를 호철이 이어서 7년째 타고 있다. 벌써 수명이 15년이나 된 차다.

운전을 하던 호철은 발등을 찧고 싶도록 후회했다. 부인의 흉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좀 더 깊숙한 걸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거기서 바보같이 뭐에 데인 거라는 걸 물어보느냔 말이다. 이 멍청이. 뭐에 데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그랬는지가 중요하잖아. 모녀의 반응으로 봐서 그 흉터는 부인의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 고의로 저지른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작의적인지 모르지만 호철은 그것이 누군지 확고부동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인 오상복. 이제 그동안 두터운 위장막으로 가려진 거짓이 벗겨지고 있다. 더러운 진실이 드러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호철을 깨운 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핸드폰 소리였다. 정말이지 원시적이기 그지없는 벨소리다. 하긴 비틀즈의 ob-la-di ob-la-da를 벨소리로 했다가 음악에 취해 전화 받는 걸 항상 놓쳐서 지금의 원시적인 벨소리로 바꾸긴 했지만. 호철이 핸드폰을 들어 사무적으로 말한다.

“노원 경찰서 강력반 강호철 형삽니다.”

“형.”

핸드폰 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사이버수사대에 근무하는 태규란 놈이다.

“웬일이야.”

“어우...항상 이렇다니까. 부탁할 때는 금방이라도 숨 넘어 갈듯이 말하더니 그새 잊어버렸어?”

“내가 뭘 부탁했는데.”

“그럼 전화 끊어?”

그 순간 번뜩 놈한테 부탁한 것이 생각난다. 호철은 금방이라도 핸드폰 안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로 외친다.

“알아냈어?”

“그래.”

잔뜩 부어터진 목소리다.

“내가 나중에 술한잔 살게. 어떻게 됐어?”

“형 말이 맞아.”

심장이 두근거리는 호철이다.

“오상복 살인사건하고 비슷한 미제사건이 있어. 작년 12월14일...”

태규의 말에 잠겨 있던 호철의 기억의 뚜껑이 열린다. 태규가 말하기도 전에 핸드폰에 대고 외치는 호철이다.

“홍제천 살인사건!”

“응. 피살자는 홍제동 하천의 축대에 기대선 채 살해됐어. 살해 흉기도 오상복 살해 흉기하고 비슷하고.”

“담당 경찰 전화번호 있어?”

“내가 문자로 보내줄게.”

통화가 끊기고 5초도 안돼 호철의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문자에 뜬 숫자를 누르자 신호음이 간다. 길고긴 신호음. 속이 타는 호철이다. 주인을 잃고 울어대는 핸드폰을 물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그러기 전에 신호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서대문 경찰서 강력반 민지현입니다.”

호철은 잠깐 할말을 잃었다. 여자다.

여자가 강력반이라니.

“여보세요.”

호철이 잠깐 대답이 없자 저쪽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진다.

“노원 경찰서 강력반 강호철입니다.”

“노원 경찰서? 거기서 무슨 일이죠?”

“죄송합니다만 지금 뵐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공무 때문이라면 내일 서(署)로 오세요. 난 지금 바쁘거든요. 모처럼 한잔 할 생각이니까.”

“급합니다. 연쇄살인사건입니다.

“내일 강력2반으로 오세요.”

상대가 막 전화를 끊을 기세다. 호철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작년에 일어난 홍제천 살인사건하고 관계있습니다.”

호철의 외침에 상대방은 잠시 말이 없다.

“그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터졌어요.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철의 말에 침묵하던 상대가 입을 연다.

“지금 어디죠?”

“노원경찰서 근처입니다.”

“...멀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상대가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불광동에 있는 낙원이란 이자까야여요.”

“알겠습니다.”

“제가 취하기 전에 와야할 거여요. 난 취하면 잠자는 버릇이 있어서.”

통화를 끊자마자 급하게 차를 돌리는 호철이다. 이미 세상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퇴근길인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호철에게 그런 것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안된다. 도로를 온통 붉게 물들인 차량들의 미등 속으로 질주하는 호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