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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와 박지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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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와 박지원의 죽음.
2017-11-13     프린트스크랩
   ▲조선의 나전으로 마감을 한 바둑판.  조선의 화려한 문화의 한 면을  보여준다. 


1801
년 신유년 8월말 한성부 견편방에 있는 의금부 옥사에서 한 작고 왜소한 사내가 함거에 실려 동대문을 나와 포천 철원 단발령을 거쳐 북관의 종성(鐘城)으로 유배를 떠났다.  당년  52세가 되는 초정 박제가의 유배길은 금부나장과 나졸들의 호위로 삼엄했으나 박제가의 모습은 초라하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신유년 의금부 옥사는 참혹했다. 이가환 이승훈 정약종이 처형됐고 정약용 정약전 형제는 남쪽으로 유배형을 당했다. 박제가는 이들 남인계열의 서학과는 무관 했으나, 개인적으로 서학을 신봉하면서 벽파의 대표인 김관주의 집에 흉서를 투척했다는 죄로  박제가의 사돈이자 친구인 윤가기가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 혐의가 박제가에게 번져 모진 고문을 당했다. 윤가기는 끝내 처형을 당했다.

박제가는 가혹 한 고문에도 거듭 부인을 했고 의금부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조정은 2천리 유배형으로 처벌(?) 했다박제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조선의 가장 먼 북쪽 함경도 종성으로 정해진  부처지에 한 달 만에 도착했다.

 

귀양길은 한 달이 걸렸습니다. 노정은 말할 수 없이 험난했고 고을원의 구박과 아전배들의 행패는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지요.  제가 북으로 올 때 소문이 천지간을 태워 마치 바둑돌을 쌓아놓듯 위태로웠고 평생의 친구들마저 모두 도망을 갔지요.

북관 4년을 차디찬 움막에 살았고 의금부 옥사에서 고문을 당할 때는 거의 죽음과 입을 마추었습니다. 빗발치는 매질에 살과 가죽이 떨어져 나갔고 유혈이 낭자하니 통절한 원한이 세상을 가득 채울정도였습니다.

 ( 發配以後二朔行路之險阻縣首之逼迫輿擡之侵罵難以筆舌馨也.  余之居北 禍焰煟鬱 勢急累碁平生親愛皆望風奔潰 四載北關 幽囚雪窟 去歲囚禁幾死拷脣榜董如雨皮肉剝錠流血盈獄寃酷毒痛流鋪內外) 박제가가 박지원에게.


박제가가 유배를 살던 집은 종성읍치에서 20리쯤 떨어진 두만강가에 있었다. 종성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를 바라다보는 곳으로 서쪽으로 백두산과 동쪽으로 온성과 인접한 오지중의 오지였다. 종성은 여진사람들이 동건산(童巾山)이라 부르는 명산이 있다. 마치 종을 엎어 놓은 것 같다는 의미로 부른 동건산에서 유례한 이름이 종성이다.

이곳은 산악과 강으로 포위되어 함경도안에서도 고립된 탓에 안녕하심-, 그렇쓰꾸-마등의 특이한 말투를 쓰는 고장이다.

 

박제가는 이곳에서 부사와 아전배들의 철저한 감시와 멸시를 당한다. 서학과 벽파에 대한 공격이라는 혐의는 그를 옥죄는 단서였고 천지간에 하소연할 곳 없는 현실이었다. 박제가는 한양에 사는 아들 장암에게서 생활고에 집을 팔았다는 편지를 받고 오열하며 이사를 할  곳을  알아보라고 연락을 한다.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면 내가 볼 때 부여가 좋겠구나.  서책에 마음을 두고 일체의 세상과 연을 끊는다면 그도 신선의 삶이 아니더냐?

(如欲鄕居扶餘亦可吾善處讀書自遣至於一切世味精綠幾乎斷送可謂去神仙不遠)박제가 간찰.

 

박제가가 살고 싶어 한 곳은 충청도 부여다. 박제가는 부여현감과 부여와 공주 중간에 있는 이인찰방을 역임할 때 소실을 얻기도 하고 얼마간의 전답도 마련했었다. 친구 좋아하는 박제가는 백마강으로 윤가기, 이희영등 백탑파 동인들을 불러 즐기던 추억이 아련했다.

박제가는 종성에서 책 한권을 썼는데 '주역(周易)'이다고난이 닥치면 주역을 찾는 조선의 선비답게 박제가는 주역의 논증에 나선다. 지금 전하는 박제가의 주역은 64괘의 글자 하나 하나를 고증하는 의리주역을 추구하는 고거주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성은 문화적으로 황폐한 곳이었다. 향교에 주역의 한세트인  계사전이 없어 박제가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박제가는 36개월만에 한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6개월만에 고문과 유배지에서의 휴우증으로 사망한다. 1805425일이었다. 그런데 박제가가 세상을 떠난 곳에서 불과 지척에서 연암 박지원이 투병을 하다가 같은 해 1020일 사망한다. 스승과 제자로 서로 나이를 잊은 망년객(忘年客)으로 37년간을 믿고 의지했던 조선의 불세출의 지성들의 죽음은 한 슬픈 영화의 엔딩의 자막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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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blemMe |  2017-11-14 오전 11:42:2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쥐원이가,,국회의원도 8선의원인데.... 바둑도 무지 잘두는군요,,,,흠,,부럽네...  
마로니에™ 까불걸 까불어야지 원...ㅉㅉㅉ
자객행 농담 하신거겠지요^^
자객행 |  2017-11-15 오전 11:40: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조가 조선의 사마광이다 했다는 박제가 말년이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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