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기사(碁師)의 노래
2 도사쿠 바다 너머와 악수를 하다
3 진정한 바둑마니아
4 오가사와라에서 만난 김옥균
5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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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오로 창사10주년기념 특집칼럼
2편. '도사쿠' 바다 너머와 악수를 하다

 

실체 없는 이념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용을 믿고 의지해 오던 일본의 속성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예능과 기술을 존중하는 사회체계를 구성한다. 기사(碁師)를 꿈꾸며 '무산'의 나루터를 떠났던 '바둑'은 일본사회의 이런 풍토 아래서 하나의 품격체(品格體)로 나타난다. 바둑이 한갓 도략의 범주에서 예와 도를 따지는 품격체로 인정을 받아 바둑인들의 결집과 관리를 국가의 공무(公務)로 발돋음하기까지는 무산의 나루터를 떠났던 사내 이후 7백년 세월이 흐른 뒤였다.

무산의 나루터를 떠났던 사내 이후 일본 바둑은 '삼대실록' '관가문장' '군서유종' '속일본기' '부상략기' '서궁기' '고승전'등에 50여 건의 바둑기록을 남기며 '강호시대'에 와 만개의 꽃을 피운 것이다. 그 중심이 '기소(碁所)'다. 기소 성립의 배경은 바둑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초대 기소(碁所) 산샤(算砂) 이후 일본바둑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도사쿠(道策, 1641-1702) 때다. 도사쿠는 반상의 혁명과, 바둑으로 세계와 소통한 고대바둑의 유일자다. 덕천(도쿠가와 이에야스)막부 이래 바둑의 중심 기소(碁所)를 둘러싼 일본바둑의 강호(江湖) 쟁투사에서 단연 발군이었던 도샤쿠는 그간의 전투위주의 바둑의 고정관념을 돌과 돌의 접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돌의 능률을 고려하는 단계로 바꾸어 놓는다. 

이제까지의 바둑의 세상보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연준 것이다. 도샤쿠는 당대의 2인자와의 기력의 간격을 두점 치수로 벌리며 명실상부한 당대 바둑의 일인자로 군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 세계바둑의 지남(指南)이 된다. 그리고 도샤쿠의 공과는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사쿠는 바둑으로 세계와 소통했던 역사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산샤와 조선인 이약사(李約士)와의 1615년 대국 기록을 '적광사' 소장품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고, 1598년 조선과의 바둑교류를 기록하며 당시대 국가간의 바둑교류를 엿볼 수 있으나 도사쿠는 극적이다. 도사쿠는 1682년 4월17일 유구의 사신과 4점 대국을 벌여 1승1패를 한 후 상대에게 7단(上手)을 인허한다. 같은 해 도사쿠는 조선에서 사신으로 온 이사진(李士進)과 4점 대국을 벌이기도 한다. 도사쿠는 명나라의 바둑고수들의 기보를 검토하며 연구하는 등 열린 세계관의 소유자였다. 도사쿠가 조선 유구 중국 삼국과의 바둑기록을 남긴 이유가 그것이다. 

막부시대 유구와 교역을 트자 유구왕 상풍(尙豊)은 직접 사신단을 이끌고 일본막부와 접촉하며 우호를 다진다. 이 과정에서 폭풍을 만난 유구인들이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가 이들의 배에 실려 있는 물품에 눈이 먼 제주목사가 해적으로 몰아 모조리 참수하여 조선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는 일도 일어난다.

제주목사가 참수를 한 유구인 속에는 유구의 왕자도 끼어 있어 외교문제를 걱정한 조선조정은 쉬쉬하며 덮기도 한 시대다. 일본은 유구와의 관계를 잘 살려 1710년에는 양국간의 바둑대회를 여는 단계로까지 발전시킨다. 일본은 유구에 바둑이 유행하고 고수가 있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양국 바둑대회까지 연 것이다.

1710년 12월1일. 사절측과 바둑대회를 열었다.
12월6일. 사절 측이 유구의 음악을 시연했다.
12월9일. 다시 바둑대회를 열었다.

쇼군실기는 일본과 유구의 바둑대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받아 좌은담총도 언급을 한다(위의 기록처럼 상세한 것은 아니다) 이 기록은 유구의 방대한 문서자료인 '역대보안(歷代寶案)'의 기록이다. 역대보안은 날짜별로 정리를 해 놓고 있다. 유구는 바둑이 매우 강했다. 일본과 유구바둑의 대결은 1748년까지 계속된다. 유구의 고수(田頭)가 본인방 '인세끼(因錫)'와 대국을 하게 된다. 유구도 일본과 같은 무치석 바둑을 두고 있었다. 유구가 무치석 바둑을 둔 것은 일본의 영향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무치석 바둑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유구 안에서 자생적으로 두어진 바둑이다.

이 칼럼을 일본 바둑기자들이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바둑학자 중에도 유구의 무치석바둑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연구과제라고 본다.

18세기초 바둑은 조-청-일 삼국을 넘어 유구 대만  베트남 티베트까지 퍼져 있었다. 필리핀과 베트남을 거론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독자도 있겠다. 그러나 베트남도 한자 문화권이고 조선 중국과 함께 과거제도가 있었던 나라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역사적 기록과 '기보'도 전하는 나라다.

유구는 일본 남단에 있던 작은 섬이다. 그런 섬에서도 일본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며 외교를 전개한다. 그러나 유구는 1410년 조선 성종1년에 조선에 사신단을 보내며 선물목록 속에 바둑판과 바둑알을 보낸 적도 있다. 도사쿠 시대 동아시아는 교류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알고자 했다. 그 속에서 바둑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사쿠는 말했다.

바둑 안의 세계는 열려 있다고.  바둑을 아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고 .

          본인방 인정서

         
슈사쿠의 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