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자못 호연한 마음으로 우주를 노래한다. 큰 바둑판 앞에 두고 호기롭게 돌을 던지듯 큰 무대 위에서 헐렁한 옷을 입은 배우마냥 조급하지 않고 성도 내지 않으면서 하늘을 따라 살고 싶다 한다. 이덕무는 세상을 한판의 큰 바둑에 비교한다. 이 말의 연원은 '청오경'이다. 동양의 한갓(?) 풍수책에 불과한 청오경은 유장한 언어로 말뚝 같은 철학을 말한다.

태고에 혼돈이 있었다. 기가 싹을 틔워 혼돈의 공간을 채우며 음과 양으로 나뉘었다. 음양이 움직여 맑음과 흐림을 만들면서 (비로소) 생로병사가 일어났으니 과연 어떤 존재가 이것을 주관했더란 말이냐. (盤古渾淪 氣萌大朴 分陽分陰 爲淸爲濁 生老病死 誰實主之)

'반고'는 창조의 시대를 말한다. 판이 짜여지던 시대  판 위에 음양이 오고 음양이 움직여 인간이 왔다는 것이다. 음양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신(神)이다. '산해경'은 인간과 신이 교통하는 장소에 '바둑'을 배치한다. 산해경은 천지와 인간의 시원시대를 기록한 동양의 고전이다.ㅁ
'산해경'은 중국 고대 신화 전설의 모체로, 중국 고대의 인문 지리를 묘사하고 있는 중국의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보다 1천년이나 먼저 쓰였고 저자 또한 불명이다 보니 사서(史書)로 약점이 있다 할 것이나 신화를 역사로 읽어내는 학문적 성과가 나오면서 중국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텍스트가 된 책이다. 

(2008년 10월 태백산바둑축제 당시 선비만석님 작. 태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산해경은 요순시대 이전을 말하고 있다.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으로 이어지는 삼황오제 시대의 오디세이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 산해경 속에 바둑의 에피소드가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苦山之首曰休與之山其上有石焉.名曰帝臺之碁.
五色而文其狀少鵠유帝帶之石.所以禱百者也.腹之不蠱...)
-산해경 중차칠경

고산(苦山)이 있다고 한다. 고산은 황하 중류에 있는 산인데 눈과 털이 붉은 산돼지 모양의 형상으로 바른말을 잘 하는 산고(山蠱)가 살고, 정상에는 노란색에 잎이 둥근 나무 황극(黃棘)이 자란다. 고산은 휴여산, 고종산, 고요산 등을 좌우 2백 리 안에 거느리고 있는 명산이란다.

이 고산의 초입에 휴여산이 있다. 휴여산에 돌이 있는데 제(帝)의 바둑돌이라 한다는 것이다. 돌은 오색인데 메추리알처럼 생겨 ‘제대(帝臺)의 돌’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이 돌은 온갖 신들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기도 하고 신들의 놀이로도 이용되며 사람이 돌을 갈아 마시면 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해경의 이 기록을 '소천탁치'는 박물지의 요순의 바둑 기록보다 앞서는 기록이라 하고 '주백고'는 휴여산이 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던 산이라 고증을 한다.

고종산은 '회남자'에도 보인다. 신들이 모여 놀던 산이 휴여산이란 것이다. '목천죽간'은 염제의 딸 '여시'가 죽어 묻은 곳이 고종산이라 한다. 그렇다. 휴여산 고종산 고산은 중국 신화의 중심산이다. '帝의 바둑돌'은 박물지에 전한다는 요순의 바둑신화보다 앞서는 기록으로 바둑의 역사를 삼황오제의 창조신화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 기록은 신화이면서 바둑의 역사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둑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이기에 신화시대의 상산제(上山祭)에 바둑이 등장한다는 말인가. 해마다 개천절을 맞아 강원도 태백산에선 바둑축제가 열린다. 전국의 바둑인이 모여 바둑대회를 열고 중요 행사로 유명프로들을 초청하여 태백산 정상의 제단 안에서 바둑을 둔다.

태백시와 지역 바둑협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언뜻 생뚱맞게 보이지만 연원을 살펴보면 이리도 간단치 않다. 단군왕검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민족의 나라를 개국한 날, 바로 그 장소에서 당대의 정상급 바둑의 고수들이 한판의 대국을 벌인다는 것은 이벤트 이전의 그 무엇이다.

태백은 예로부터 삼봉삼천(三峰三川)이라 했다.

천의(天衣) 상대(上臺) 함박(含朴) 삼봉과 황지(黃池) 공연(孔淵) 오십천(五十川)이 그것이다. 신령의 땅 태백에서 오천년 한민족이 공동체를 이룬 바로 그날을 기려 산의 정상에서 바둑 한판을 둔다는 것은 세상에 다시 없는 행사다. 그 행사가 벌써 9회를 맞은 2010년 개천절의 태백산 상산대국이 성황을 이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