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자신의 문집에 '옛날부터 각종 놀이가 많아 그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음악과 바둑 그리고 서예만이  명명을 유지하며 온전하다(古器從橫誰識名琴碁書法名留情)" 했다. 거문고와 바둑을 아기(雅技)로 생각해 온 옛 식자들의 생각 속에서 음악은 조화(調和)요 바둑은 기세(碁勢)라는 언급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탁오, 기준 등 중국인은 물론 정원용, 이유원, 조희룡 등 조선인들이 그들이다.

사죽이나 팔현 등 각종 악기를 늘어 놓고 연주를 하는 음악에서 하모니를 중시(조화를 강조)하는 것은 "바둑이 조화"라는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각종 악기가 내는 음율의 하모니, 즉 조화는 필연일 것이다. 그러나 생과 사를 다투고 승패를 결정해야 할 반상의 게임에서 조화(調和 )를 논할 수는 있다 해도  바둑의 덕목이 조화라는 단언은 어폐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현현기경'은 물론 오늘날에 전하는 옛 기보에서 무슨 무슨 세(勢)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까닭이 있을 것이다. 바둑에서 세(勢)라는 말의 상한점을 찾아가 보면 '수서 경적지(隨書經籍志)'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세(勢)가 반상에서 일어나는 접전의 어떤 것이 아니라 방법(方法)이나 형식(形式)을 말하는 어떤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기도(碁圖) 기품(碁品)이란 말도 등장한다. 비슷한 시대 바둑 용어 중 신세(新勢)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한국의 역사학자 이이화는 신세를 17도에서 19도로 바뀐 반상의 변화라 주장을 하기도 한다.

'기보세전보(碁譜t勢全譜)'는 묘수풀이집이다. 서문에서 현현기경, 기경십요, 유중보의 기결(碁結) 등을 인용하여 필자 본인의 의견을 첨부하고 있다(자세한 해설은 곧 출간될 필자의 책 [사화기림(史話碁林)]에서 확인하시라.)  '기보세전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위기십결의 한자의 교란 등과 바둑을 대하는 옛 사람들의 인식이 오늘날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의 확인이다. 돌을 버리는 것은 세력을 얻을 때이다. 패를 고려치 않고 패를 쓰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위기세전보'의 한 페이지.

내용 속에 바둑을 두는 대국자의 포커페이스(심리상태)를 강조하는 대목은 웃음을 자아낸다. 반상의 변화에 따라 울고 웃는 심리상태의 소유자라면 그 사람은 결코 고수일 수 없을 것이다. '기보세전보'의 작성자는 바둑에는 허식이 많다고 한다. 이 말은 1940년대 현현기경을 발간한 최남선이 한 말과 비슷하다. 최남선은 현현기경이 오랜 시간을 두고 내려오며 서로 베끼고 고치고 첨삭을 한 탓에 온전한 책의 모습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했다.
 

당대의 최남선도 온전한 현현기경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동시대 오세창도 같은 의견이었다. '기보세전보'도 예외는 아니다. 사활의 해답조차 정답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도 작성자의 기력(?) 탓이 큰 이유일 듯하다.

또 한 편의 '기보'도 비슷한 내용이다. 그러나 사활 수에 대한 접근은 '기보세전보'보다 진지한 모습이 돋보인다. 기보 작성방법의 청홍색의 사용이라든지 아니면 흑과 홍색의 물감을 사용하여 독자의 가독력을 시각적으로 고려한 점 등이 엿보인다.

조희룡이 말한 수많은 사람들이 옷소매 속에 기보를 넣고 다니며 그 종류가 수십 종이라던 기록의 반증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판매를 위한 '기보집'의 출간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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