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경성 을지로 서촌(西村)인쇄소에서 발간된 '조선기계총람(朝鮮棋界總覽)'은 당시 조선바둑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4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자 속에 무려 4천여 명의 조선바둑계의 회원들을 전국의 행정단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제외한 13도(道)를 분류해 보면 경성이 614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경남(부산) 408명으로 결코 경성 못지않았던 바둑붐을 보여준다(3위는 평안남도 257명이고, 최하위는 강원도 57명이다).
기계총람은 조선 바둑의 고수로 한상룡 윤주병 신호열 이상기 김병수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 김병수가 주목된다.
김병수(金炳洙, 1893-1951)는 의사로 익산에서 삼산(三山)병원을 설립하여 의료 활동을 하는 한편 경성과 군산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2년여의 옥고를 치르는 등, 바둑인으로 친일부역자였던 한상룡 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김병수는 일제의 거친 감시활동을 뚫고 광희여숙 등의 학교를 설립 운영하기도 한 조선의 선각자다. 김병수는 당시 호남 제일의 바둑의 고수였다. 조선에 와 있던 일본 전문기사 다카베 도헤이의 말이니 믿어도 좋을 듯하다.
김병수는 바둑을 즐기는 애기가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둑보급에도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 증거가 1925년 12월31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있다. 동아일보 익산지국은 신춘 바둑대회를 개최한다는 보도를 하고 있는데 그 후원으로 삼산(三山)병원을 기록한다. 삼산은 김병수의 호이기도 하다.
익산바둑대회는 1월7일 익산시내 복성관에서 열린다. 수십 명의 지역 바둑인들이 모여 열전을 벌인 끝에 익산군청의 김인섭이 우승을 했다 동아일보 1월10일자는 보도하고 있다. 이 보도는 전국신문에서 지방바둑대회를 보도한 최고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매년 수십여 건의 지방바둑대회를 보도하기 시작한다.
김병수는 자신의 병원에서 바둑대회를 열기도 했다. 병원 건물은 김병수가 1922년 신축하여 해방후까지 병원으로 사용하다 국민은행에 매각되어 익산의 은행금고건물로 인식되다가 음식점 등을 전전한 끝에 지금은 전북의 근대 문화재로 남아있다.
김병수는 유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바둑 안에서 김병수라는 존재는 오늘 본 칼럼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다.천년의 소리이자 가장 한국적인 소리로 포장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판소리 등에 비추어 보면 바둑의 굼뜬 걸음을 실감한다. 이런 인물과 연관된 바둑기록을 도외시한 채 자료가 없어 연구를 못한다는 말은 무지하거나 한가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바둑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바둑은 고급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인물과 얽힌 재미와 사회 교훈성을 모두 충족한 보기드문 문화재료다.
당시 '대구의 서, 호남의 김'이란 말이 있었다. 대구의 서병오와 익산의 김병수를 일컫는 말이었다. 서병오는 대구 갑부로 대구지역 바둑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스스로 지역 최고의 고수기도 했다. 다카베 도헤이에게 바둑으로 큰 돈을 잃고 "녹일 녹일(김만수)!" 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오늘날 지방의 바둑후원자들의 대선배쯤 된다고 본다.
대구의 이재윤 덕영치과 원장, 부산의 흥우산업 이철승 사장 등이 그들이겠다. 바둑후원자들이 점점 고갈(?)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익산의 김병수의 발굴은 의미가 있다.
-----------------------
위 그림의 화제는 아래와 같다. 김병수는 천상 조선문인의 바둑인식을 갖고 있던 인물이다.
가인이 꽃 아래에서 생황을 불기에
선비는 술상 위에 한쌍의 귤을 올려놓아 화답하지.
어지러운 세상도 술잔 위의 버드나무가지마냥 아련하고
비안개 끌어다가 봄강가에 고운 천을 짠다네.
(佳人花底篁千古/韻士樽前柑一雙/歷亂金梭楊柳崖/惹烟利雨織春江).
.gif){kind=logo}
도라온맹호
하이디77
칠복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