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바다의 메신저 유구(오키나와)

1392년 동자단(東自端)이라는 일본인 승려가 유구 국왕의 국서를 들고 조선을 찾아온다. 조선의 예조를 대표해 사신의 예로 동자단을 맞은 신숙주는 유구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고 유구에 대한 정보를 해동제국기라는 책으로 남긴다.

신숙주는 유구를 이렇게 전한다.

- 유구라는 나라는 찰도(中山)가 왕인데 동래현에서 5430리에 있다. 유황이 많이 생산되고 기온이 항상 따뜻하여 1년에 두번 농사를 짓는다. 서쪽으로는 중국과 남만 북쪽으로 일본과 조선으로 향하는 상선들이 항구에 가득하다. (해동제국기)

신숙주는 나라이름 중산(中山)과 왕의 의미인 찰도(察度)를 혼동하여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에 일본을 기록하며 일본의 국토가 북으로는 흑룡강성에서 남쪽으로 제주도 근방까지 이를 정도로 길다고 나름의 정보를 적고 있다. 유구는 신숙주의 기록이 아니더라고 한반도와는 매우 친밀한 나라였다.  


유구는 고려말부터 한반도에 사신을 보내기 시작하여 태종 성종을 거쳐 순조 때까지 50여회 사신을 보낸 나라다. 고려사는 1389년 유구의 왕이 사신을 고려에 보내오며 왜구에 끌려갔던 고려인 30여 명을 데려와 수교를 청하며 시작된다.


고려는 이를 허락하고 김윤후를 책임자로 한 답례사를 유구에 보낸다. 이후 유구가 50여 회 사신을 보내왔고 고려 조선은 3번 유구에 답례사를 보낸다. 조선은 유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답례사가 적은 것을 미안해 하며 북경에서 유구 사신을 만나면 유구 사신을 알뜰히 챙기(?)는 것으로 성의를 표하기도 한다.

유구는 성종때 유구 특산품인 바둑판과 바둑알을 조선왕실에 선물로 보낸다. 유구는 바둑이 매우 성했고 기력도 상당했다. 유구바둑의 자료도 희귀하다. 그러나 찾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를 살았던 청나라 사람 '심복'이 쓴 자서전인 부생육기에 유구바둑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 유구국의 연안에는 구멍이 뚫리고 영롱한 부석(浮石)이 난다. 파도가 치면 석경(石磬) 소리가 난다. 나는 한가할 때면 바둑을 두는데 유구국의 바둑알을 애용했다. 백돌은 고동을 깎아 만든 봉구석(封口石)이고 흑돌은 창석(蒼石)을 갈아 만든 것이다. 바둑알은 흑백돌이 모두 두께 2센티미터(현대도량형으로 따져), 둘레 6센티미터로 가운데가 볼록하고 언저리는 얄팍하여 앞뒤 구분이 없다. 중국의 운남성에서 나는 바둑알과는 다르다.

바둑판은 25센티미터 두께의 나무로 만들고 판 위에 줄을 음각으로 친다. 그리고 13센티미터 정도의 다리를 네개 만들어 단다. 유국국은 바둑이 매우 유행하고 규칙이 있고 고수들도 많다. 바둑이 끝나면 (중국과 다르게) 집을 헤아리고 돌은 따지지 않는다. 유구국은 신선을 본뜬 바둑의 신을 모신다. (碁神殿) 사람들이 이를 보지는 못하지만 나라에서는 존중했다. (부생육기)

얼마전 제주특별자치도 역사문화원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된 학자들의 유구논문을 읽으며 황당했다. 유구는 고려삼별초가 들어가 개척하기 전까지는 신석기시대였다는 것이다. 고려말 신석기시대인들이 조선 태종때 조선에 와 조선술을 가르쳐줄 정도로 발전(?)했으니 삼별초 만세라도 불러줘야 할 듯하다. 바둑에 대한 인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구는 일본의 속국이니 당연히 일본에서 바둑을 들여왔을 거라는 식의 고민 없는 그것 말이다.

유구에는 한문을 사용한 나라답게  바둑의 자료도 의외로 많다. 유구는 바다의 메신저였다. 유구는 일찍이 조선 일본 중국 남만 페르시아 등과 해양교통로를 열고 바다 건너 세계의 정보에 귀를 열고 살았다. 바다는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다. 바다는 바람과 함께 세계의 정보를 실어다 주기도 한다.

일찍이 바다와 함께 살았던 나라 유구는 바다를 통해 전해오는 바둑의 소식도 알았다. 18세기 유구의 승려 하야쓰는 자신의 실기(實記)에 유구바둑은 아육왕과 함께 왔다 기록한다.

유구에 바둑이 들어온 곳은 중산(中山)이다. 유구는 중산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는 상산, 중산, 하산국 등 세 나라였다. 중산국의 수도는 수리(首里)였다. 하야쓰의 말대로 유구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아육왕은 신라에도 영향을 준 인도의 불법왕이다. (다음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