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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기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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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기바둑
2011-07-26     프린트스크랩

 

안중패(安重覇)라는 자가 있었다. 굳이 홍보실 박 과장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심상치 않는 이름에 걸맞게 하는 짓거리가 별스러웠다. 작년 이맘때 입사했는데 감색 한복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출근해 주위를 어리뻥하게 만든 게 달갑지 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명절이나 기념일도 아니고, 또 신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걸 보고 모두들 시큰둥했지만 오직 전만호(全萬鎬) 사장만은 ‘카하, 카하!’를 연발하며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되았어! 저런 발상이 필요한 거야. 매양 그 밥에 그 나물이면 참신한 생각이 떠오르겄어? 저 친구 싸가지가 있어 보이누만.

 

사장의 시각에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홍보실 박 과장은 시답잖은 눈길을 풀풀 날리며 ‘에이 밥맛’을 연발했다. 자신의 인생에 저런 인간이 끼어든 건 3년 넘게 복권을 샀어도 5백원 이상 당첨되지 않은 것보다 더 재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에 못질했다.

그런데 안중패라는 위인은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대리를 달더니 8개월 만에 쪼르르 사장부속실로 발령이 나는 것과 동시에 과장이라는 직함을 떠억 이름자 앞에 붙였다. 가뜩이나 못마땅해 하는 박 과장의 빈정거림이 발딱 일어났다.

 

“언놈은 높은 음자리표에 잘 보여 방귀나 땔땔 뀌며 살판났고, 언놈은 와이프 눈치나 실실 살피며 뒷짱구나 긁고.

 

박 과장이 푸념을 늘어놓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기 바둑’이었다. 안중패라는 작자가 승승장구하는 것도 배알이 뒤틀렸지만, 그건 그래도 한 다리 건너 남의 얘기니 그 작자 없는 곳에서 아작아작 씹어대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내기 바둑은 달랐다.

그 작자가 홍보실에 근무할 때엔 완전히 ‘봉’이었다. 흔히 쓰는 말로 박 과장은 안중패의 ‘플랑크톤’이었다. 간단한 담배 내기에서 시작해 점심과 커피 내기, 저녁에 술 한 잔 사기···. 상납에 상납의 연속이었다.

7급인가 둔다는 놈이 이창호와 조훈현이 둔 바둑을 쪼르르 복기(復棋)하는가 하면, <현현기경>이나 <기경중묘>에 나오는 50수가 훨씬 넘는 바둑알을 늘어뜨리고 정확하게 수순을 밟아 묘수풀이의 해답을 쫑알대며 들려주었다.

 

“자네 말이야. 완전히 사기바둑이구만. 자네처럼 두는 7급이 어디있어?

 

이렇게 말하면 정색을 하며 팔짝 뛰었다.

 

“정말이예요. 7급이 틀림없다니까요.

 

“누가 자네에게 7급이라고 했어?

 

“고등학교 때 다닌 기원 원장이요.

 

“뭐야? 이 사람아. 고등학교 때라면 8년이 다 돼가잖아.

 

8년이 문제가 아니죠. 왜냐하면 그 이후엔 바둑을 안 뒀으니까요.

 

박 과장은 끓어오르는 울화를 삭이느라 끄윽끄윽 목 졸린 개구리 울음을 토하며 돌아섰다.

8개월 동안 안중패에게 상납한 내용물을 생각하면 머리 속에 지진이 날 지경인데, 이 작자가 잠시 전 홍보실에 들어와 쫑알쫑알 흥얼대는 노래가 박지윤인가 하는 여자 가수의 ‘나는 남자, 나는 남자’하는 가사의 곡이었다.

 

‘언제는 니가 여자였냐.

 

마음 속으로 송곳질 하며 비아냥대는데 녀석이 툭 한소리를 내놓았다.

 

“박 과장님, 지난 일요일 기원에 가서 바둑 몇 판 두었걸랑요. 근데 말이죠, 나에게 강1급이라지 뭡니까.

 

“뭐야?

 

“그러니까 앞으론 나와 바둑 두려면 일곱 점은 깔아야 합니다.

 

“좋아, 말이 나온 김에 내기 바둑 한 판 두지. 일곱 점 깔고. 자네 말대로 공짜는 아니야. 점심 내기로 하지.

 

‘욱’하는 성질에 한판 붙었으나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바둑이 중반을 넘어서기도 전에 박 과장의 비명횡사한 대마가 두 군데나 생겨났다.

 

“와따, 내가 바둑에 도가 텄나보구만. 하루아침에 실력이 엄청 늘어뿌렀어. 탁구 같으면 왼손으로라도 쳐줄 수 있는데 바둑은 그렇지 못하니 안 되겠고.

 

제풀에 성깔을 이기지 못한 박 과장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횅하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흐트러진 바둑알을 쓸어 담으며 안중패는 ‘나는 남자, 나는 남자’를 쫀득하게 흥얼거렸다.

이로부터 일주일 후에 연말을 기해 ‘사내 바둑 대회’를 알리는 공고가 나붙었다. 안중패는 때를 만난듯 입방정 떨며 홍보실을 기웃거렸다.

 

“제가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지난 대회 우승자는 홍보실 김 실장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참에는 우승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럴거야.

 

“예?

 

“나는 출전을 안할 거니까 자네가 우승을 하게.

 

“에이, 그럴 수 있습니까. 호랑이는 용과 싸워야 하는 것이지 족제비나 너구리와 싸울 수 없는 일이잖습니까.

 

“그래서?” “출전을 해서 자웅을 결해 보자 그 말입니다.

 

“글세.

 

“차암,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실장님하고 제가 내기 바둑을 두는 게 어떻습니까?

 

“내기 바둑이라?

 

“예에, 전 제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걸겠습니다. 실장님은 뭘 걸랍니까?

 

“돈은 좀 그렇고. 내 책상 옆에 있는 현학금(玄鶴琴)을 걸지. 저래 봬도 3백 년이 훨씬 넘은 골동품이야. 자네 시계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지는 않아.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윽고 결전의 날이 왔다. 각 부서에서 출전한 선수들은 12명으로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총호선으로 제한 시간은 각 1시간이고, 세 번 초읽기를 하며 덤은 6집 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결승에는 홍보실 김 실장과 사장부속실의 안중패가 올라왔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더구만. 그만큼 천변만화의 변화가 있다는 게지. 나는 이번 대회의 우승자에게 상패와 상금 외에 높은 고과 점수를 매겨 승진에 도움을 줄 것이야.

 

전만호 사장의 약간은 모양새가 뒤틀린 결승전을 알리는 말씀이었다. 돌을 가리니 김 실장이 흑번이었다. 이윽고 결승전이 시작됐다. 한 점 한 점의 착점이 이제까지의 여느 대국과는 다른 장엄한 기류 속에 놓아졌다.

 

단숨에 결판을 내버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는 쪽은 김 실장이었다. 밀고 밀리는 중반전을 지나 끝내기를 마치고 보니 반면으로 ‘빅’이었다. 안중패의 낯이 환하게 밝아졌다.

빅이 난 바둑을 화국(和局)이라 하는데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로 여겼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과 같이 사내 바둑 대회에서 우승하고, 또 김 실장과 내기 바둑을 두어 현학금까지 접수했다.

 

“아하하하, 실장님. 어떻습니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만 안다는 옛사람의 말이 틀리지 않다니까요.

 

“하여튼 축하하네. 헌데, 내 충고 한 마디 하겠네. 이 현학금은 족히 3백 년은 됐네만 나름대로 전설이 있네.

 

“전설이라니오?

 

“이 현학금을 만든 장인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는구만. 거 뭐다 몇 년 전에 은행나무 침댄가 하는 영화 있었잖아? 그런 거야. 한을 짓씹으며 오동나무에 목을 매단 거지. 장인이 목을 매단 오동나무를 베어 이 현학금을 만들었다보니 깊은 밤 귀신들이 찾아와 울부짖으니 주인의 손을 떠나면 그게 걱정이라니까.

 

그런 걱정 붙들어 매라는 낯으로 돌아간 안중패는 이틀 후에 현학금을 다시 가져왔다. 깊은 밤 느닷없이 현학금에서 화포를 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겁이 나서 가져왔다는 얘기였다.

 

이날 퇴근 시간이 되어 김 실장은 사장실을 노크했다. 그의 손엔 현학금이 들려 있었다. 소파 깊숙이 상체를 묻으며 김실장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제가 고수(高手)지요? 약속했던 대로 사장님 책상 위에 있는 이조백자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본래 두 사람은 내기를 했었다. 천방지축 날뛰는 안중패에게 현학금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어 7집안으로 지되 일주일 내로 현학금을 다시 찾아오면 이조 백자를 준다는 약속이었다.

한겨울에 현학금 줄을 팽팽히 조여 그것이 끊어질 것을 내다 본 김 실장의 계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전만호 사장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쩌렁 울렸다.

 

“아하하하, 자네가 고수일세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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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55 |  2011-07-18 오전 11:33: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앞서 올렸던 글이 저희 부주의로 삭제되는 바람에 마지막폄에 이어 다시한번 올려드립니다. 두번 올린 글이라고 나무라지 마시길....  
말단하수 |  2016-12-30 오후 4:45: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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