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我生然後殺他!! 허정무
|
|
|
|
|
我生然後殺他!! 허정무
아생연후에 살타라
2000년 3월 28일 미국 CNN에서는 두 개의 큰 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팀의 브라질 격파, 미국 스텔스기의 유고 추락'. 한국축구, 아니 아시아축구의 사상 첫 브라질 격파. 오색종이가 그라운드에 난무하고 붉은 악마 의 우렁찬 함성이 귓전에 쩌렁쩌렁 울린다. '3·28잠실대첩', 한국축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한다. 태극마크를 단 우리 선수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강인한 의지를 갖고 열심히 싸워줬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언제나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실력은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없다. 하지만 정신력을 마음먹기에 따라 버전업이 가능하다. 전력과 기술로 따지면 브라질은 우리보다 한수 위다. 브라질은 세계랭킹1 위이다. 우리는 FIFA랭킹 36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진돗개와 같은 근성이 필요하다. 세계최강 이창호도 무명의 기사에게지지 않는가.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주눅들지 마라.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자. '부득탐승(不得貪勝)'이었다.
바둑팬들은 바둑을 좋아하는 내가 바둑의 361로와 같은 3-6-1전형을 써서 이겼다고 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해석이긴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평소 3-4-3전형을 구사한다.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날 때는 수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3-4-3전형에서 허리를 강화한 것이 3-6-1시스템이다. 3-6-1이든 3-4-3이든 4-4-2든 전형은 중요치 않다. 전형은 유행일 뿐 전략이 중요하다. 대 브라질전을 앞두고 '삼바축구'를 꺾을 비책 마련에 며칠 밤낮을 고심했다. 브라질이 강팀이긴 하지만 우리가 항상 진다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고 제 실력을 100%발휘하는게 중요하다. 정신무장이 첫째다. 다음은? 전략이다. 그렇다. 바둑에서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전법을 쓰자. 바둑에서 '선실리, 후타개'라면 축구에서는 '선수비, 후공격'이다. 브라질팀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브라질은 뛰어난 개인기를 이용한 중앙돌파와 좌우 윙백의 공격 가담이 잦다. 히바우도 등의 중앙돌파는 허리를 강화한 빗장수비로 대처한다. 사이드어태커의 측면 오버래핑은?
양쪽 라인을 타고 오므로 여차하면 공을 밖으로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 특유의 스피드와 기동력을 살려 역습을 가한다. 공격이 없는 수비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 작전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스위퍼 홍명보 가 이끈 우리 수비는 '드리블의 마술사' 브라질의 환상적인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교체멤버로
승부수를 띄운 김도훈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결정타를 날려줬다.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 그리고 작전이 잘 조화를 이뤄 '예술축구'를 구사한다는 브라질을 낚아챌 수 있었다.
나는 이날 한 번 이긴 것이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브라질을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더 크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축구공은 둥글다. 브라질을 이긴 반면 태국한테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축구 아닌가. 축구경기는 이번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가깝게는 2002년 월드컵도 대비해야 한다.
흑백게임과 축구는 한방에 통한다.
브라질전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다음날 서능욱 九단과 한수 지도의 기회를 가졌다. 나는 대국 일정이 잡힌 이후 밤 시간을 틈내 접바둑공부를 열심히 했다. 상대는 서능욱 九단이다. 九단, 입신(入神)의 경지다. 서능욱, '반상의 손오공'이라는 별호가 말해 주듯 반상무림을 주름잡은 공격의 달인이다. 이런 서능욱 九단을 이길 수 있는 해법은? 답은 역시 '아생연후에 살타'다. 상대가 강하니 브라질 전 때처럼 일단 수비로 교란시키며 지치게 만든 다음 발빠른 역습을 가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두 손을 든 서능욱 九단은 "왕년의 명수비수답게 수비가 뛰어난 데다 빠른 수읽기를 바탕으로 전투에도 일가견이 있으니 아주 징그러운 하수"라고 한다. '잡초류'아니 축구인이니 '잔디류'라는 별칭까지 즉석에서 붙여줬다.
내가 바둑을 배운 것은 69년 1월 17일 중동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을 때다. 그날 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목포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쉰 나는 그때 축구를 하기 위해 다시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고재욱 감독(울산 현대)이 바둑두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오게 됐다. 그때 9점을 놓던 바둑이 지금은 오히려 3점을 접어줄 정도다. 사실 바둑은 나의 유일한 취미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편인데 잘 안된다. 덜컥수가 튀어나오고 손따라 두는 수가 생긴다. 축구만큼은 안된다. 바둑과 축구는 '한방에 통하는'부분이 많다.
나는 선수들에게 '시야를 넓히라'고 강조한다. 바둑에서 부분적으로는 이길 수 있으나 대세를 놓치면 바둑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특히 이번 브라질 전에서는 '세고취화(勢孤取和); 형세가 불리하면 싸우지 말고 평화를 취한다)', '공피고아(攻彼顧我; 적을 공격할 때는 먼저 나의 능력을 살핀다)', '피강자보(彼强自保; 적이 강하면 우선 나를 돌본다)' 등 위기십결(圍棋十訣)을 열심히 써 먹을 셈이다.
또한 선수들에게 '항상 생각하고 연구하라'고 주문한다. 특히 쉬는 시간에 하릴없이 지내지 말고 두뇌스포츠인 바둑을 두라고 권한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오빠부대'에 휩싸여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한다. 바둑은 다른 게임과 달리 단순히 쾌락만 주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과 더불어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고 전술, 전략을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최근 나는 축구에서도 바둑에서도 모두 성공을 거뒀다. 가슴 벅찰 정도로 기브다. 브라질대첩이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나를 '브라질 감독'이라 부르며 분에 넘치는 환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잘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못할 때는 한없이 냉정하다. 숲보다는 나무를 봐야 하듯 현재보다는 먼 미래를 봐야 하는 것이다.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
-ps :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올렸으면^^
한국 화이팅!!
|
|
|
|
|
|
|
|
|
|
|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