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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 바둑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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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바둑과 교육
바둑은 골프와 더불어 내가 가장 즐기는 취미이다. 하나는 실내에서, 또다른 하나는 실외에서 하는 종목이니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내심 '전천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요즘 박세리 선수와 이창호 九단의 예를 자주 든다. 둘 다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골프나 바둑 하나로 세계에 우뚝서는 성공을 했다. 이들을 고교장이 추천한다면 받아 주지 않을 대학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서로 데려가겠다고 야단이 날 것이다. 이제는 모든 과목을 골고루 다 잘해야 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지닌 재능를 살려주는 교육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박세리와 이창호는 우리 교육현장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둑은 68년 중학교 3학년 때 대학 초년생이던 형님(이해진·현 삼성종합화학 전무)과 함께 배웠다. 그때만 해도 키가 껑충했던 나는 교실에서 뒷좌석에 앉았는데 수업중에 노트에 금을 긋고 친구와 바둑을 두던 기억이 생생하다. 형제가 같은 시기에 시작하다 보니 자연 경쟁심도 생기게 마련인데 그러나 대학생으로서 시
간이 자유스러웠던 형님에 비해 고교입시를 눈앞에 두었던 나로서는 점차 차이가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형님은 동생의 체면을 봐서 다른 사람에게 '맞바둑'이라고 치켜세워 주시나 본데, 입시에 이러구러 매달리다가 형님이 결혼한 이후는 바둑 한번 제대로 둘 기회가 없었다. 오늘 반상에서 온갖 해괴한 요술과 재주를 다 부린다는 손오공(서능욱) 사범에게 한 판 이겼으니 이 자신감이 스러지기 전에 조만간 형님을 만나 여의봉의 필승전법을 구사해 봐야겠다.
바둑을 한창 배우던 학창시절엔 용산 중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남영동의 남영기원을 자주 출입했다. 동창생인 장두진 七단도 그 기원 출입멤버였다. 그때 기원문턱을 넘나들던 친구들은 다 1급바둑이 되었다. 지금도 동창바둑대회를 열면 1급만 30명이 넘어 기별로 토너먼트를 벌여야 할 정도로 용산고엔 바둑광들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과 바둑
국회에서 최고수는 아마7단급의 장재식 의원이다. 이수인 의원이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췄고 김영배 국회부의장, 임채정 의원, 홍기훈 의원, 유인태 의원, 김경재 의원은 나와 고만고만하고 안동선 의원은 한 치수 센 편이다. 더욱이 '대외목 포석'으로 유명한 양건 四단은 임채정 의원의 외조카뻘이라 그편에 무임승차해 많이 배웠다. 다들 바쁜 의정활동에 수담을 나눌 시간은 거의 없지만 기력이 어금버금하다 보니 어쩌다 허리띠를 풀게 되면 밤을 새워 두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시간을 많이 빼앗는다고 바둑을 가까이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휴회 때 기자실에서 바둑을 두는데 지나가시다가 "이의원도 바둑둬?"놀라 물으신 적이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바둑두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으니 아마 내가 바둑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대통령께선 바둑을 둘 줄 모르시면서도 그러나 바둑의 이론이나 동향을 줄줄 꿰차고 있어 가끔 놀라게 한다. 국가의 녹을 먹는 위치에 있는 공인들에게 촌음이라도 아껴 국민을 위한 봉사에 신경쓰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지 바둑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은 아니다.
교육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가장 어려운 시절에 어려운 분야를 맡았다는 느낌이다. 학생수 1,100만명, 교사 36만명에 교육행정적까지 합치면 44만명에 월급만도 1조원이 넘는 거대조직이 교육부이다. 게다가 바둑은 프로기사만이 전문가 대접을 받는 분야이지만 교육에 관한 한은 모든 학부형이 다 일가견을 가진 전문
가로 자처한다. 19줄 바둑판은 변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혼자 조용히 앉아 수를 연구할 수 있지만 교육은 살아있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유리그릇보다 더 조심스레 다루면서 해야 한다. 바둑의 법수와 신수를 찾는 깊은 수읽기가 교육계에야말로 절실한 것이다.
이제 바둑은 학문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대학에 전공학과까지 생겼다. 바둑의 교육적인 효용이야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것이고, 머지않아 바둑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전망이라고 하니 우리의 태권도가 지구촌에 보급되었듯 우리바둑 역시 그러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둑은 서구에 또 하나의 한국, 한국적인 문화를 알릴 우리의 몇 안되는 고유자산인 것이다. 체계적인 바둑교육이 절실한 때이다
[이해찬 前 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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