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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자가 없어도 초읽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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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어느 예선 대국에서 일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2시에 대국이 속개됐는데 대국당사자가 오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흘러 초릭기할 시간에 다다랐다. 기전진행측은 그래도 초읽기를 해야한다며 초를 읽었다. 들을 당사자가 없는데 "하나, 둘, 셋…열!" 낭랑한 목소리는 대국장을 퍼져나가고 있는데 대국자는 여전히 올 생각을 안한다.
결국 1분 초릭기 5회 중 4회가 끝나고 마지막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나, 둘, 셋…" 그런데 그때서야 헐레벌떡 대국장으로 들어온 이가 있으니, 바로 당사자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당사자가 헛되이 시간을 낭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겼다는 것이다.
89년 제1기 동양증권배 1차예선 결승에서는 진귀한 시간패가 벌어졌다. 이계훈 三단과 공병주 初단의 대국이다. 이三단이 30분을 지각하여 그 두 배인 1시간을 공제 당한 후 대국을 시작했다. 이후 2시간여 열심히 대국에 몰두하던 이三단이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슬며시 일어나 대국장 밖으로 나갔다. 공初단도 기록자도 '화장실에 갔겠지.'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2시간이 넘도록 깜깜무소식, 함흥차사(咸興差使)였다. 하지만 대국자가 없다고 계시기가 멈추지는 않는다. 마침내 소비시간은 바닥을 보여 할 수 없이 기록자가 빈 바둑판을 보며 초읽기를 시작했다.
"이사범님. 5분전입니다. 하나, 둘, 셋…"
"마지막입니다. 하나, 둘, 셋…열!"
공염불 외듯 부른 초릭기도 끝이 나고 말았다. 이三단이 시간패를 한 것이다. 그때서야 허겁지겁 뛰어온 이三단이 바둑돌이 치워진 바둑판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 내 바둑판이 몽땅 어디로 갔어?"
"시간패입니다."(기록자)
나중에 이三단에게 그 사연을 들어보니 지각으로 공제 당한 시간을 깜박 계산에 넣지 않은 것.
( 월간바둑 이성구 편집장 / stlee@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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