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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구는 것'(?)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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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인터넷 생중계가 진행 중인 검토실, 인터넷 해설을 하는 젊은 해설자 주위로 많은 프로들이 모여 이수, 저수를 지적하던 중 묘한 느낌의 수가 반상에 떨어진다.
"갈구나?"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하자 젊은 프로들 모두가 이 뜻을 알아듣고 동의한다.
갈군다? 이게 무슨 뜻이지? - '갈구다'라는 동사는 아직까지 전체 국어사전에는 정식으로 등재되지 않은 일종의 비속어나 사투리에 가까운 말이다. 오래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이 쓰였는데 PC통신과 인터넷의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더욱 급속하게 퍼진 말이기도 하고.
뜻은 대체로 '못살게 군다', '자꾸 약점을 건드려 성가시게 한다', '짜증나게 한다'의 느낌에 가깝고 용례로는 군대 고참이나 직장 상사가 자신의 하급자를 매일같이 괴롭힌다면 그 느낌이 바로 '갈구다'라는 동사에 딱 맞는 말이다.
바둑에서의 '갈군다'의 의미도 이와 같다. 다만 현실과 틀린 점이 있다면 '상대가 괴로운 만큼 아주 좋은 수'라는 의미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즉 바둑에서는 아주 심하게 상대를 '갈굴수록 ' 그 만큼 '빛나는 한 수'가 된다.
젊은 해설자나 그 주변의 동료들이 내뱉은 "갈구나?" 라는 표현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그대로 해설로 나가는 경우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좀 더 언어순화(?)의 과정을 거쳐 아주 점잖은 방식으로 해설에 쓰여진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네, 아주 감각적인 수입니다."
"백이 그냥 참고 받으면 굴복이죠"
"그렇다고 반항하면 참고도와 같이 A,B를 맞보기로 해서 겁나는 전투가 시작됩니다."
"백의 응수가 아주 까다롭게 되었는데요"
"놓이고 나니 매우 좋은 수인데요, 오늘 흑의 컨디션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갈구는' 수에 상대도 발끈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발끈한 수에 대해서는 이런 해설이 많다.
"네, 기세입니다. 기세죠. 그냥 받으면 굴복이라 본 것입니다."
갈구는 수가 좋은 수
2003년 현재 한국의 프로기전에서 선착의 유리함을 보완해 백에게 주는 덤은 6집반이다. 이 의미는 흑이 먼저 둬서 얻는 유리함을 6집반정도로 보는 것이고 흑,백 서로간에 실수가 없다면 마지막에는 반집승부가 된다는 뜻으로 확장해도 될 것이다.
'갈구는 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의 응수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가도 많이 봐줘야 '한집'정도 손해를 보는 정도에 그칠 때가 많다. 문제는 그 한집이 그대로 승부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인데 어떤 프로가 세번 '갈구어' 세번 성공했다면 3집이 굳게 되고, 이후 서로간에 실수가 없다면 3집반을 이기는 것 아닌가?!.
따라서 4천왕과 같은 초일류 기사들의 감각이나 기량, 뛰어난 수읽기, 그리고 그들의 성적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은 천부적으로 상대를 아주 심하게 '갈구는'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
물론 개인의 기풍이나 취향에 따라(아니면 기자들의 취향에 따라) 표현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루이 9단처럼 아주 '사납게' 갈굴 수도 있고, 삭감과 침투의 달인인 이창호 9단처럼 '심오'하게 갈굴 수도 있으며 조훈현 9단의 경우처럼 '흔들기'로 표현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아주 좋은 수, 즉 '갈구는 수'에 대해 발끈했을 때의 부작용은 '망했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즉 서툴게 저항했다가 어느 젊은 프로의 표현처럼 '뽕빨'이 났다는 식으로 판이 뒤집히는 것이다.
고단자들과 접바둑을 두어본 적이 있다면 대부분 그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주 요상하게 이리 붙이고 저리 찌르고 하는데 어떤 때는 물러나서 망하고, 어떤 때는 반발하다 망하곤 한다. 프로들의 바둑은 고수와 하수의 접바둑처럼 극명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불나방처럼 걸려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네, 승부는 이미 이곳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네, 걸려들었습니다.네 저렇게 받은 수가 완착이었어요.
"참고 두었다면 참고도와 같이 긴 승부였습니다."
"역시 이와 같이 두어서 후일을 기약해야 할 곳이었습니다."
즐기나?!!
승부가 확정된 유리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상대를 갈구면 젊은 프로들은 그것을 '즐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굳이 상대를 갈구지 않더라도 무난히 이기는 상황에서, 복잡하게 머리를 써가며 기어코 그런 수를 둔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즐기는 것'이라나.
하지만 응수타진과 같은 수는 상대의 선택을 제한하고 자신의 운신 폭을 넓히는 것인데 상대가 저항하면 복잡한 변화를 유도할 때도 많다. 큰 수가 날만한 곳이라면 서로간에 평지풍파가 날 수 도 있는 것인데, 재능도 병(?)이라고 끝까지 갈구며 즐기다가(?) 때로 역전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나보다.
또, 너무 뻔히 보이는 함정수 같은 경우에는 이런 표현도 쓰는 것을 보았다.
"날로 먹겠다는 수작이죠..."
너그럽게...
'갈구나?!' 혹은 '뽕빨나다'와 같은 느낌이 강한 언어 구사는 나이 지긋한 많은 팬들의 분노와 혐오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젊은 기사가 해설을 할 때에, 강한 표현이라도 분명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해 그들의 말을 별다른 여과없이 없이 그대로 내보낸 적이 몇 번 있었다. 결과는 바로 날라왔다. 전화를 자주 받는 편은 아니지만 분노한 팬들의 전화를 여러 통 받게 됐던 것이다.
참으로 분노했었던 것 같다. 10분정도의 통화시간에서 그 분의 의견을 주로 들어 드렸는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혹시 아직도 분이 안풀리셨다면 이번 글을 계기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그분 말씀의 요체는 '천박','경박', '참고 들어주기 힘든', '품격을 해치는'- 그러한 것이었다. )
하지만 때로 젊은 해설 기사들의 표현이 위험수위를 조금씩 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너그럽게 넘기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젊으신 (^^;;) 팬들은 그런 표현들에 꽤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설을 맡게 된 젊은 기사들도 나이 지긋하신 팬들이 당혹하지 않도록 수위를 아주 잘 조절 해야겠고 말이다.
세대간의 표현과 감성을 서로 이해하고 수위를 잘 조절한다면 훨씬 더 재미있고 교양있는 인터넷 바둑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C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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