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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을 골로 보낸 공포의 바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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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을 골로 보낸 공포의 바둑광
2005-09-15 조회 9040    프린트스크랩
- 들어가며
70년대에 월간「바둑」지에서 읽은 실화인데, 한 산부인과 의사가 산모 남편으로부터 호되게 따귀를 맞았다는 이야기.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이 산부인과 의사는 진료 틈틈이 시간만 나면 바둑판을 벌리는 지독한 바둑광이었는데 하루는 예의 그 '샌드위치 대국'중에 응급환자가 들이닥쳤다. 간호원이 헐레벌떡 달려와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급한 환자임을 알렸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인데도

- 이 의사, "응, 그래? 1분이면 끝나…. 곧장 갈게."
- 그래놓고 바둑삼매경에 빠져 엉덩이 뗄 생각을 않는 것이 아닌가. 간호원이 재차 달려왔건만 이번에도
- "곧 가마"란 건성대답뿐이고….

그리기를 한두 차례, 돌연 바둑판이 왈칵 뒤집어지더니 눈에 불이 번쩍 튀는게 아닌가. 정신을 수습하고 앞을 쳐다보니 한 젊은 남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곧 죽일 듯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씩씩대고 있었다. 산모의 남편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 의사, 진료실로 다리가 안 보이도록 달려갔고, 다행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후일담이 더 재미있다. 몇 년이 지나 이 바둑광 의사가 어느 기원에서 바둑상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낯선 이가 슬며시 다가와 맞은 편에 앉더니"000선생님이죠?"하며 매우 반가운 체하더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때 귀싸대기를 올려붙인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그 사건 이후 도대체 바둑이란게 얼마나 재미있기에 환자가 죽어 나자빠져도 정신을 붙드는 것인가 하여 자기도 바둑을 배웠꼬 지금은 선생님과 같이 광이 되었노라고 지난 세월을 털어놓는 대목에서 둘은 급기야 너털웃음을 터드렸다. 마침 기력도 동수여서 이후 오래도록 바둑벗이 되었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

[ 의사 곽창훈의 바둑수필 중에서..바둑가이드 中 ]

위의 이야기는 바둑의 중독성에 관한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이다. 일상 생활에서 중독성이 강한 것들은 아주 많이 있다. 그중 바둑과 같은 게임은 어떤 평가를 받던 면면히 이어져 왔고, 인류는 언제나 이런 중독성을 즐겨 왔던 것 같다

중독성을 가진 여러가지 것들을 따져 보자면, 바둑은 인류의 중독 선호를 해결하는 것중 아주 건전한 편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보면 담배(니코틴), 마약, 알콜, 섹스(sex, 관음, 포르노,매춘), 도박, 살상(파괴와 전쟁) 등이 인류가 역사시대이후로 거의 포기하지 못하는 중독의 굵직한 것들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사악(邪惡)한 것으로 규정하는 교육을 받아왔으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지 않는 아이러니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으로 느낀 면에서, 어떻게 보면 인간의 끊임없는 중독 선호는 인간의 본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한가지 예를 들어 인간이 그토록 섹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수만큼이나 인류가 지구에서 번식할 수 있었을까? (...맞지?)

게다가 자본주의 산업화의 물결은 이 중독성의 아이템을 아주 유망한 분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도박은 강원랜드의 예에서 보듯이 합법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어떤면에서 이런 중독의 부분이 일상의 한축임을 인정하는 나라들에서는 마약이나, 섹스산업의 상당 부분을 아예 공식화하고 국가에서 유통을 관장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없애지 못할 바에는.

아무튼 바둑의 중독성은 마약등에 비길 수는 없겠으나, 실로 만만치 않아서 10만에 가까운 사람을 골로 보내는 일이 우리역사에서 발생한 일이 있다. 그 예를 한번 보자.

◆ 30만을 골로 보내다.

[배경 : 강조의 정변과 거란의 2차 침입]

30만을 보내버린 이야기는 고려시대의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전반기의 무신 '강조'(康兆, ? ~ 1010)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군단장쯤되는 무장(武將)이었다. 강직하고 기개가 드높은 전형적인 고려의 무인인데, 중앙권력의 정쟁에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이 스토리의 주역을 맡게 된다. - 목종 때 중추사우상시(中樞使右常侍)로서 서북면도순검사가 되었다고 한다-

장군 강조가 북방의 수비를 맡는 최고책임자일때 고려 임금은 목종, 당시의 고려의 왕권은 근친혼과 이에따른 외척의 발호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귀족문화를 상당히 이어받은 고려왕조는 귀족과 왕족의 사치가 높은 편이었고, 유교적 잣대로는 문란해 보이는 성 풍습을 상류층이 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근친혼은 왕족의 혈통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목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친 어미니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당시 목종의 친 어머니인 천추태후(千秋太后)가 외척 김치양과 사통하여 아들을 출산한 후, 병약한 임금인 목종을 시해하고 김치양의 아들을 왕위에 옹립하려 한 시도를 포착한 것이다.

어머니와 사통한 김치양과 외척의 힘을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목종은 생각끝에 변방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장군 강조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뒤를 이을 후사가 없던 목종은, 당숙 욱(郁)의 아들 대량군(大良君)에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서북면도순검사 강조에게 왕궁을 호위할 것을 명하게 되는 것이다. 뒤숭숭한 헛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목종이 시해되었다는 소문마저 돌게 되고, 임금의 명대로 군사 5000을 이끌고 수도 개경으로 향한 강조는 대량군을 임금으로 즉위시키하다 아직 목종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금이 살아있는 처지에 후계를 즉위시키려던 강조의 입장은 난처해졌지만 되려 강조의 일처리는 신속했으며 정확했다. 당시 상류층의 행태를 직접 목도하고 분개하게된 강조는, 외척 김치양일파를 모두 피의 숙청을 통해 없앴으며, 병약한 목종을 폐위하고, 새로 대량군을 앉혔다(현종). 그리고 목종은 충주로 유배되는 중 강조의 명을 받은 군사들에게 시해된다(1009년). 목종은 이래저래 화를 불러들인 셈이 된 것이고 이 사건은 강조가 장악한 권력의 정통성 문제로 불거지게 된다.

강조의 정변은 북방에서 대치하고 있던 거란의 요나라를 자극한다.요나라는 일찌기 993년 고려의 뛰어난 외교정치가인 서희[徐熙, 942 ~ 998]의 담판에 녹아나 강동6주를 거져 주다시피 한 전력이 있었던바[거란의 1차침입], 이에 대한 고려의 외교적 응답이 신통치 않아 내심 보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의 성종은 강조의 이신벌군(以臣伐君)을 문책한다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걸고 내심 강동6주를 되찾고 고려를 정벌하기 위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한다(1010년)

★본격적인 30만 골로 보내기
(한국바둑인물사 34p '강조장군의 군진대국')

거란의 침입소식을 전해들은 고려조정에서는 강조를 '행영도통사'로 삼고 이현운을 부장으로 삼아 30만 대군으로써 통주(通州:평북 선천 서북쪽)에서 적과 싸우게 했다. 홍화진(의주)을 공격하던 거란군이 양규장군의 수비군에 막혀 여의치 않게 되자 통주성으로 이동,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강조는 통주성 빡 조그만 평야지대에 군사를 세곳으로 배치시켜 놓고 검차(劍車)를 사용하여 거란군을 한데 몬 다음 일시에 격멸시켰다. 검차는 당시의 신병기로 지금으로 말하면 장갑차쯤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첫 싸움은 고려의 대승. 장군 강조는 거란을 과소 평가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바둑을 즐기던 강조는 전세가 호전되자 전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진중에서 참모들과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며, 한번 바둑에 빠져 들게 되자 국가의 운명을 양 어깨에 짊어진 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책임도 잊은채 밤을 새우며 계속 바둑을 두게 되었다. [고려사의 대목이 이와 같은 대목이 적혀있다]

얼마후 전열을 정비한 거란의 선봉장인 야율분노의 선봉부대가 통주지역의 요새인 삼수채를 공격해 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급보를 접한 강조는 바둑을 두면서 말했다 " 그까짓 거란놈들. 입안의 음식과 같아서 적으면 맛이 없다. 좀 더 많이 들어온 다음에 모조리 함께 잡자"

강조가 큰소리만 치면서 바둑만 두는 사이 삼수채가 함락되었다. 그리고 고려의 본진이 위협받았다. 그러나 사령관이 바둑만 두고 있으니 전략이 제대로 세워질리 없고 군대의 사기도 개차반이 되었을 것이다. 고려의 본진은 순식간에 박살났고 수많은 고려군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강조또한 그의 부장과 함께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려의 주력을 섬멸한 거란군은 개성을 점령하였고, 현종은 나주로 피난갔다가 현종이 거란에 입조하는 조건을 내걸어 가까스로 왕조붕괴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뺨때리는 사람과 중독증세의 IDEA REVIEW ]
-중독과 뺨때리기

앞서 바둑에 중독된 의사는 자칫하면 생사람 하나를 잡을 뻔 했다. 그러나 그 의사의 옆에는 뺨을 때려 바둑을 그치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장군 강조도 바둑을 두었다. 그리고 그는 한사람이 아닌 30만의 장병과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옆에는 과감히 뺨을 후려쳐 바둑을 그치게 만들 사람이 없었다. 비약하자면 뺨을 후려 갈기지 못한 여파는 30만의 군대를 골로 보내고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행여나 장군 강조의 뺨을 후려칠만한 참모가 한 사람이 있었다면 적어도 수도가 함락당하고 잿더미가 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보듯 사람이 어떤 것에 갑자기 빠져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골의 의사이건 평범한 주부이건 혹은 국가대사를 책임진 막강한 권력자이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어떤 것에 빠져들때 자신의 뺨을 한대 세게 갈겨줄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인간은 아무리 절제력이 강해도 누구나 중독에 빠져들만한 본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본성이 또 사람을 생동감있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사건을 만들게 하기도 말이다. 하지만 불행한 사건이 터지는 것은 미연에 막아야 되지 않을까? 뺨을 후려쳐서라도 말이다. (때론 그럴만한 용기가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강조의 최후]

강조는 거란에 붙잡힌 후 성종에게 끌려가 항복을 권유받았다. 다음의 대화가 오고갔다고 한다. 그리고 살해되었다.

" 그대같은 걸출한 인물이 어찌하여 작은 나라 고려에서 태어났는가. 짐은 호생지덕(好生之德)으로 그대를 살려주고 싶으니 나의 신하가 되는 것이 어떤가"
"내가 어찌 지금까지 싸운 적군의 신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예로부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다. 내 비록 고려의 역적으로 더러운 이름을 천추에 남길지언정 너의 신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조의 부장 이현운은 항복하였다.
" 이미 나의 눈은 새 일월(日月 해와달, 즉 임금을 말함)을 보았거늘 어찌 옛 산천을 되새기리까"

강조는 분개했다. 그리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네 어찌 고려의 장군으로써 그 따위 수작을 뇌까리는가!"

변방의 순수한 무장으로 출발한 강조는 우연한 기회에 중앙으로 진출,왕위를 교체하고 부패한 조정에 피의 숙정을 벌이며 최고권력자가 되었었지만, 전쟁에서 패해 사로잡혀 죽었다, 하지만 한시기를 주름잡은 풍운아로써 기개를 잃지않고 장렬한 최후를 맞은 것은 강조와 같은 바둑팬으로써 고마운 일이다..

[badukdol / drago@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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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골목 |  2006-12-04 오전 11:4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내가 그때 강조라두 그럴가능성 농후 술까지 곁들이면서...  
전프로 |  2009-01-02 오후 8:58:3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는데,?
어리석은 강조장군...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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